[천자 칼럼] 여론조사

루스벨트와 랜던 후보가 맞붙은 1936년 미국 대선에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가 1000만명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유권자 4.5명 중 한 명꼴이라 오차가 거의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 랜던이 57%의 지지율로 이긴다는 예상이 나왔으나 결과는 62%를 얻은 루스벨트의 당선이었다. 자동차 소유자,대학 동창회 명부 등을 이용하는 바람에 잘사는 계층만 표본이 되고 표가 많은 저소득층이 빠졌기 때문이다. 반면 조지 갤럽은 불과 5000명만을 조사하고도 정확히 맞췄다. 연령과 계층을 대표하는 표본인구 개념을 도입한 덕이다.

1948년 미 대선에선 갤럽이 실수를 했다. 듀이 뉴욕주지사가 트루먼 대통령을 이길 것으로 전망했지만 결과는 트루먼의 승리였다. 선거 한 달 전 13%포인트나 차이가 나자 더 이상의 조사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게 화근이었다. 그 후 여론이 급변해 버렸다. 설문 조사는 누가 질문을 하는지,조사대상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 미국 흑인 병사 인종차별 조사에서 백인 면접관의 질문에는 11%만 '차별을 경험했다'는 반응을 보인 데 비해 흑인 면접관이 질문했을 땐 그 비율이 35%로 치솟았다. 영국 여성들은 일생 동안 평균 2.9명의 남성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들은 11명의 여성과 상대했다고 답했다는 조사도 있다. 여성들은 감추려 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어서란다. 조사기법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걸핏하면 틀린다. 이유는 많다. 그 중 하나가 '침묵의 나선 이론'이다. 자신의 의견이 주류에 속한다고 여기면 주저없이 밝히지만 소수라고 판단되면 침묵한다는 이론이다. '브래들리 효과'란 것도 있다.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흑인 후보 톰 브래들리가 백인 후보를 누르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결과는 달랐던 데서 유래했다. 유권자들이 인종 편견을 감추기 위해 거짓 응답했던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안철수 교수가 출마하지 않고 박원순 변호사를 밀기로 함에 따라 정치권이 난리다.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달라질 거다,거품이 많다 등 분분한 해석을 내놓으면서도 저마다 이해득실 따지기에 바쁘다. 어떻든 한 가지는 분명히 확인됐다. 신념도,철학도 없는 기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강한 반감이다. 여야 모두 3류정치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가 날아든 셈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