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증권사 최연소 CEO 기록한 '요리하는 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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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 매니지먼트 - 인물탐구
부친에게 배운 '신뢰' 영국 금융街에 심었죠
불가능한 미션은 없다
'007 광팬' 영어이름도 제임스
문전박대 딛고 한국증시 소개…하루 거래량 5% 혼자 매매 '기록'
'부드러운 카리스마' 원천은
知人에 요리 대접하는 게 기쁨…주걱 들고 직원 배식 자청도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
'전설의 제임스(Legendary James).'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51)의 별명이다. 이 별명에는 유 사장의 인생이 응축돼 있다. 그가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으로 발령받아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1992년.그는 비행기 안에서 외국인에게 깊은 인상을 줄 만한 영어 이름을 찾는 데 골몰했다. 고민 끝에 떠올린 이름은 제임스.영국 영화 007 시리즈의 '광팬'이기도 했지만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닮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부임하자마자 현지 기관투자가들을 찾았다. 제임스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지만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영국 런던의 금융가 '더 시티'에서 한국은 투자 불모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굴하지 않았다. 단순히 주문을 달라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대신 한국 증시 관련 법률과 회계제도 등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어 돌리며 한국 투자에 대한 스터디를 제안했다. 투자자들과 만나 '신뢰'도 심었다.
마침내 성과가 나타났다. "내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일한다"는 유 사장의 말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눈앞의 수익을 좇는 브로커라기보다는 믿을 만한 동반자란 인식이 퍼졌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기관투자가 사이에선 "한국 주식을 사고 싶으면 제임스 유를 찾아라"는 말이 퍼졌다. 당시 하루 국내 주식시장 전체 거래량의 5%를 혼자 매매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때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전설적(legendary)'이란 애칭이 붙었다.
귀국 후 8년 만인 2007년 3월,47세의 나이로 국내 대형 증권사의 '최연소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그는 한국투자증권을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만드는 새로운 전설을 쓰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서애 유성룡의 15대 손
유 사장의 좌우명은 신뢰다. 어렸을 적 부친의 영향이 컸다. 1960년 경북 안동에서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의 15대 손으로 태어난 그는 전통적인 유교가풍 속에서 자랐다. 부친은 틈만 나면 '신뢰'를 강조했다. 사람을 믿고,남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평생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꿈은 외교관이었다. '국제통'의 싹은 어릴 적부터 시작됐다. 고려대 부속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기업가'를 꿈꾸기도 했다.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경영에 매료됐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택한 직장은 한일은행.뱅커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사업을 하려면 금융업무부터 배워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은행을 1년반 다닌 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영대학원(MBA)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증권맨이 된 건 어쩌면 우연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대우증권에서 유학 온 선배와 함께 대우증권 뉴욕사무소에 놀러간 것이 계기였다. 당시 뉴욕사무소장이던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은 증권업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줬다. 유 사장의 마음속에 증권맨이라는 새로운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MBA를 마친 뒤에도 갈등은 있었다. 지도교수는 박사과정을 밟을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증권맨에 대한 열정이 더 강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고민한 끝에 한국행을 결정했다. 1988년 당시 국내 최대 증권사였던 대우증권에 입사했다.
◆증권가 최연소 CEO 등극그는 1999년 10월에 돌연 대우증권을 떠나 메리츠증권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대우증권이 어려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직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대우그룹 몰락의 여파에서 대우증권을 구해내 세계 일류 투자은행으로 만들어보고자 했지만 대세를 거스르기엔 역부족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유 사장은 대우증권을 떠나야만 했던 것을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꼽는다.
메리츠증권에서 전략사업본부장 겸 기획재경본부장으로 일하던 2002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 욕심 많기로 유명한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당시 동원증권 부사장)의 '삼고초려' 정성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동원증권에서 국내외 기관투자가 영업을 총괄하는 홀세일(wholesale)본부장과 IB본부장 등을 거쳐 2005년 동원증권과 한투증권의 통합을 통해 새롭게 출범한 한국투자증권에서 영업 및 기획총괄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 과정을 통해 전문분야인 국제영업뿐 아니라 기획,리서치 등 증권사 경영 전반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 한국투자증권 사장에 부임해 대형사 최연소 CEO 기록을 세웠다.
◆요리를 좋아하는 '행복 경영인'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통하는 유 사장의 취미는 요리다. "요리는 가장 창조적인 예술행위"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똑같은 재료를 써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과 모양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런던 생활 때는 주말에 가족에게 손수 요리를 만들어 주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지인들을 모아 요리를 대접하는 것도 기쁨이었다. 요즘도 직접 주걱을 잡고 직원들의 배식을 자청하는 이유다. 은퇴 후 정식으로 요리사자격증을 따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에게 요리는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매개체다. 스스로 만든 요리를 대접해 여러 사람에게 맛과 함께 행복한 기분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그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유 사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CEO라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행복하고 기쁘게 해줘야 한다"며 "직원들이 출근할 때 마음이 설레고,퇴근할 때는 마음이 가벼운 회사가 정말 좋은 회사"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IB의 전설을 쓰겠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분기(4~6월)에 영업이익 909억원과 순이익 712억원을 올렸다. 전 분기에 비해 각각 370.9%,809.6% 늘어난 실적이다. 대부분 증권사가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천수답식 수익구조에 머물렀을 때 투자은행업무(IB),자산운용 및 금융상품(AM),브로커리지(BK), 자기자본투자(PI)를 묶는 4대 신수익모델을 통해 다변화된 수익구조를 만든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유 사장은 취임 이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이머징 국가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금융 실크로드' 개척에 나섰다. 지난해 베트남을 중심으로 인도차이나 허브,중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그레이트차이나 허브 등 4대 금융허브를 구축했다. 유 사장은 이 같은 금융 실크로드를 바탕으로 2015년 '아시아 톱5 투자은행 진입'이란 목표를 세웠다. '무리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순간,그는 "제임스 본드는 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별명이 '전설의 제임스'라는 게 다시 떠올랐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