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개 양돈조합 하나로 통합…작년 매출만 9조원

돈육수출 세계 2위 덴마크 호센스 도축공장 가보니

가공ㆍ판매ㆍ유통 수직 계열화…덴마크 육류시장 90% 장악
직원 110명, 하루 2만마리 도축

세계 2위 돈육 수출업체인 덴마크 양돈협동조합 데니시크라운의 호센스 도축공장.고불고불하게 이어진 컨베이어벨트가 갓 도축된 돼지들을 쉴 새 없이 실어날랐다. 돼지들이 스캐너를 통과할 때마다 돼지에 장착된 전자칩에 지방질 근육량 골격 등의 정보가 자동으로 입력됐다. 영국 일본 중국 등 수출국의 기호에 맞게 부위별로 절단돼 깔끔한 포장 용기에 담겼다. 110명의 직원이 2만2000마리의 돼지를 하루 만에 도축했다. 데니시크라운은 지난해 육류와 가공식품을 팔아 452억크로나(9조1765억원)를 벌어들였다.

◆조합의 대형화로 시장 확대농업 선진지역으로 꼽히는 유럽 농축산물 생산자 협동조합이 진화하고 있다. 농축산물 생산 기지에서 가공 · 유통 · 판매까지 담당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자유무역 확대로 커진 시장과 대형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이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협동조합들은 △대형화 △수직계열화 △엄격한 조합원 관리 등 세 가지 전략으로 경쟁력을 키웠다.

유럽 협동조합들은 먼저 조합의 규모를 키웠다. 데니시크라운은 1970년대 54개에 달했던 덴마크 양돈협동조합들을 차례로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덴마크에서 데니스크라운에 인수되지 않은 양돈협동조합은 티칸이 유일하다. 인수 · 합병(M&A)을 통해 국내 육류 유통시장의 90%를 장악한 데니시크라운은 해외로 눈을 돌려 육류와 가공식품을 13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칼 뮬러 데니스크라운 전략담당 이사는 "효율적인 경영과 비용 절감을 위해 조합 간 M&A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수직계열화로 생산에서 판매까지유럽 협동조합들은 대형화로 벌어들인 돈을 투자해 가공 · 판매 · 유통 자회사들을 설립했다. 농축산물 도소매는 물론 유통까지 직접 담당하기 위해서다.

유럽 최대 청과물 유통회사로 꼽히는 네덜란드 농산물 생산자조합인 그리너리는 1996년 농산물 유통과 물류를 총괄하는 그리너리BV를 설립했다. 이후 그리너리BV는 영국 스페인 해외 지사와 수입회사,배송회사,소매회사 등 23개 자회사를 설립했다. 각 자회사들은 전문경영인에 의해 독립적으로 경영된다.

데니시크라운도 가공과 판매,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는 10개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농산물생산자협회(DPA)에서 일하는 애드 클라센 사무국장은 "조합원들은 직접 물건을 팔기 위해 대형화를 이뤘지만 마케팅 능력이 부족해 자회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수직계열화가 되면서 유통단계가 5~8단계에서 3단계 정도로 축소됐다"고 말했다. ◆엄격한 조합원 관리

조합의 근간인 조합원 관리는 더 철저해졌다. 국내 농협과 달리 대부분 유럽 협동조합들은 조합원들에게 엄격한 출자 의무를 지운다.

네덜란드 화훼협동조합인 플로라홀랜드 조합원들은 생산한 꽃 전량을,데니시크라운 조합원들은 80%를 조합에 무조건 납품해야 한다. 조합은 막대한 물량을 선점해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을 유지하고,조합원은 안정적인 출하처를 확보한다. 농축산물의 품질 관리도 엄격하다. 조합에 물건을 출하하기 위해선 선과장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크기와 청결도 등 기준에 따라 품질이 좋으면 높은 가격을 받지만 미달하면 납품이 거부된다.

프랑스 델리엘르 르 플래시 지역에서 사과 농장을 하는 구엘로 에마뉘엘 씨는 "브르타뉴 사과조합과 18년간 계약을 맺었다"며 "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출하가 어려운 데다 혼자 판매하고 마케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농가들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코펜하겐 · 암스테르담 · 파리=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