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 '5000억 통큰 기부'…鄭답게 베푸니 고향가는 길도 '훈훈'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넉넉한 한가위'

소회계층 인재육성 사다리 역할
명절 선물로 재래시장 상품권
私財 출연…'기부문화' 선도
'정몽구 회장의 개인 재산 5000억원 기부' '협력사를 위한 1조1500억원 추석자금 조기 지급' '직원 명절 선물비로 재래시장 상품권 지급.'

현대자동차 그룹의 적극적인 '나눔경영'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정 회장과 계열사들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앞서 실천하는 것을 계기로 다른 대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재계 맏형'으로서 현대차 그룹의 역할과 리더십이 부각되는 모습이다.정몽구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5000억원 규모의 현대글로비스 주식 7.02%를 공익재단인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에 기부한다고 지난달 28일 전격 발표했다. 회사 돈이 아닌 개인 재산으로 기부한 금액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정 회장은 발표 자료에서 "기부금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충분한 교육기회를 부여해 사회적 계층 이동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약자층도 충분한 교육 기회를 갖고 이를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사다리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의미다.

이번 기부로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18.11%에서 11.09%로 낮아진다. 지분율 하락에 대한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은 거액의 개인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결단을 내렸다. ◆MK의 '통 큰' 사회공헌

정 회장이 출연하는 5000억원은 최우선적으로 저소득층 자녀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미래 인재로 육성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등록금 조달을 위해 높은 이자의 대출을 받았다가 신용 불량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저소득층 대학생들을 지원하는 데도 사용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이 평소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고 어려움에 빠진 저소득층 우수 대학생들에 대한 얘기를 들은 뒤 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정 회장의 기부금을 출연받은 해비치재단은 조만간 각계 의견을 수렴, 저소득층 우수인재 발굴 · 육성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한다. 이 돈은 문화 · 예술 · 체육 분야 저소득층 우수인재 양성과 국가유공자 자녀에 대한 교육 지원,미래 첨단분야 과학영재 발굴 · 육성을 위한 기반 조성 등에도 쓰인다.

해비치재단은 정 회장이 2007년 사회공헌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2013년까지 8400억원 상당의 사재 출연을 약속하면서 설립된 공익재단이다. 지금도 장학지원 및 다문화가정 교육지원,문화예술 교육지원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대기업 변화의 모범 사례"정 회장의 '통 큰' 사회공헌 발표가 나오자 모두 환영하고 반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재계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 회장의 사재 출연을 높이 평가하면서 대기업 역할 변화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총수들이 사재 출연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것도 좋은 사례"라며 "특히 회사 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기부하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사회 통합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 회장의 기부에 대해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오너 경영자 비판에 열을 올리던 진보시민단체들도 정 회장의 사재 쾌척에 대해 이례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정 회장의 기부 발표 이튿날 "자금 출처가 회사 돈이 아닌 순수한 개인 재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논평을 냈다. 개혁연대는 또 "정 회장의 이번 기부가 강제성이 없는 사회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라고 판단하고 새로운 기부문화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시작

정 회장의 '통 큰 기부'가 주목을 받는 것은 회사 돈이 아니라 개인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기부문화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박영렬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외국과는 달리 개인 기부가 활발하지 못한 데는 세제 등 정책적인 문제도 있지만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 탓도 있었다"며 "정 회장의 이번 기부가 이런 풍토에 변화를 가져다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투자회사 벅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 등 미국 오너 경영자들은 그동안 수십조원의 개인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공익재단을 출범시키며 부유층을 상대로 재산 절반 기부하기 운동을 이끌고 있다. 올 들어 이 재단에 기부를 약속한 인사들이 69명으로 늘어났고 이들이 약속한 기부금은 2000억달러(200조원)에 이른다.

그동안 한국의 경영자들은 상대적으로 개인 재산을 기부하는 데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지난해 10대 그룹은 8300억원을 기부했지만 대부분 회사 돈이었다.

정부의 직 · 간접적인 압력에 밀려 마지못해 개인 재산이 아닌 회사 돈을 내놓으면서 자기 이름을 앞세운 경우가 허다했다. "국내 부자들은 빌 게이츠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왜 개인 돈을 내놓지 못하는가"라는 눈총을 받아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 회장의 기부는 국내 대기업 경영자들의 기부문화를 바꾸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큰 박수를 받고 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