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ㆍ철학ㆍ패션의 아이콘' 십자가 예술이 되다
입력
수정
화가·건축가 등 60여명 참여…갤러리 이즈서 19일까지 전시
로마시대에 십자가는 치욕과 고통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의 상징이 됐다. 십자가는 인간이 체험하는 갈등과 고통의 심연을 낱낱이 드러내면서 동시에 치유하는 '역설의 신비감'을 갖고 있다.
십자가를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작품을 모은 이색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관훈동 갤러리 이즈에서 19일까지 펼쳐지는 '십자가'전에는 화가와 조각가,시인,건축가,음악가,자동차 디자이너 등 60여명의 작품 130점이 걸렸다. 삶의 슬픔과 기쁨을 십자가에 응축해낸 작품들이다. 십자가는 나무나 쇠 등을 소재로 한 열십자(十) 모양이지만 이들 작품은 미학적 특성에 따라 모양과 재질,크기 등이 각양각색이다. 제작 기법도 그림,사진,조각,금속공예,칠보,포슬린 페인팅,미디어 아트 등 다채롭다. 오숙환 이화여대 조형대학장을 비롯해 중견화가 김중식 김옥지 안광식 유민정 유인화 유현정 이승민 이영희 이우나 이재연 이현아 홍경희 씨 등 컨템퍼러리 작가들도 망라됐다.
오 학장은 한지에 빛과 십자가를 채운 소품을 내놓았다. '빛'이란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는 자욱한 발묵의 빛 형상이 펼쳐져 있다. 먹 하나만으로 색채의 100가지 스펙트럼을 빚어낸 붓질이 놀랍다. 십자가를 가로지르는 빛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잡아낸 것.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감성이 순화된다.
중견화가 김중식 씨는 20호 크기의 작품 '예수'를 내걸었다. 사실적인 예수의 모습에 무수한 점으로 십자가 이미지를 중첩했다. 이중적인 이미지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고통과 희망의 서사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빛의 화가' 안광식 씨는 '자연-기억'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아침 호수에 비친 빛으로 십자가를 묘사한 작품이다. 단순한 이미지 속에 기독사상이 깃들어 있다.
1999년 이탈리아 베로나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진 김옥지 씨는 촘촘한 색면에 반짝이는 오브제를 배치한 특유의 십자가 작품을 출품했다. 십자가를 통해 치유를 이야기해온 작가의 의중이 보인다.
자동차 이미지를 활용해 십자가를 표현한 디자이너 석정우 씨의 '카 & 크로스',창문 틈새로 들어온 빛줄기 옆에 시를 적은 노승환 권대웅 씨의 '스물아홉의 십자가',커다란 대못에 박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린 최진호 씨의 '성 다미아노 십자가',나뭇가지와 꽃다발을 이어붙여 만든 양인순 씨의 '심긴 곳에서 피어나라',직물의 무늬를 활용한 조강제 씨의 '흰 그늘' 등도 십자가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상징화되고 표현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화가 박지윤 씨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이며 패션아이콘이 된 십자가가 예술가들의 눈과 귀,손을 통해 고통과 죽음,생명과 희망의 이미지로 부활했다"며 "서로 용서하고 치유하는 신비감 때문에 전시회의 주제도 '교차'로 정했다"고 말했다. (02)736-666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