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깃발 없는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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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선우 휘의 소설 《깃발 없는 기수》를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 내용이 아직도 마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8 · 15 해방을 맞아 좌우의 깃발이 치솟았던,이데올로기로 권력을 잡으려 했던 시대가 소설의 배경이다.
주인공 윤은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은,요즘 표현으로 '제3의 길'을 걷는 기자였다. 그는 깃발보다 사람 냄새를 좋아했다. 때문에 그는 방관자나 구경꾼일 수밖에 없었다. 윤은 하숙집 아들 성호가 그 아버지의 이데올로기 속으로 빠져들어 순교자로 나서는 모습에 당황하게 된다. 소설은 윤이 성호의 이데올로기적 영웅 이철을 향해 권총을 당기는 것으로 끝난다. 성실과 정열을 가지고 그 무엇인가를 이루려 했던 젊은 주인공을 향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에게는 깃발이 없었다. 그러나 값싸게 높이 내어 흔들어진 어떠한 깃발보다도 그에게는 보다 훌륭한 보이지 않는 깃발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지금도 이 소설의 한 구절,"그에게는 깃발이 없었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깃발은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이데올로기는 기껏해야 미래 지향의 주장이다. 그것은 '지식인의 아편',또는 '정치가의 구호'이며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욕망에 따라 배분받는다"는 러시아 공산주의 정부도 1937~1938년 대숙청기에 무려 150만명을 처형했다.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자행한 만행이다.
이데올로기는 추종자들로 하여금 깃발을 들게 한다. 이데올로기의 깃발은 이긴 자에게는 영광,진 자에게는 회한을 안겨줬다. 사람들은 그 깃발을 따라 달린다. 깃발의 색깔도,방향도,기수도 묻지 않은 채 그냥 내달린다. 이데올로기의 깃발은 언제나 지도자를 위한 충성서약의 표시다. 깃발이 지닌 붉은빛,푸른빛은 지도자를 위한 치장이다. 깃발을 든 기수의 땀방울도,핏빛 자국도 결국은 그 깃발이 떠받드는 지도자를 위한 희생의 맹세일 뿐이다. 해방 후 현대사를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이데올로기의 깃발이 휘날렸다. 좌우의 깃발,통일조국을 위한 깃발,6 · 25 전쟁의 피 묻은 깃발,권위주의에 맞섰던 자유의 깃발,산업화의 깃발,민주화의 깃발,민중주의의 깃발….이들 깃발 중 어떤 것은 세상을 요동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희생과 눈물을 감수했다. 그렇지만 그 깃발이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켰던 적은 없었다. 빛바랜 깃발 덕분에 몇몇 사람만이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깃발은 '그들만을 위한 깃발'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를 분열로 내몬 그 깃발을 여전히 우리의 미래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국가적 문제들이 이념화되며 투쟁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깃발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우리 앞에는 가슴을 열고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념갈등에 사로잡히면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이 설 자리를 잃는다. 깃발의 갈등에서 벗어나야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 발전적 미래를 열어가는 자유로운 '공론의 장'을 펼칠 수 있다. 그래야만 '그에게는 깃발이 없었다'는 소설 속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진영 < 국회의원 ychin21@na.go.kr >
주인공 윤은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은,요즘 표현으로 '제3의 길'을 걷는 기자였다. 그는 깃발보다 사람 냄새를 좋아했다. 때문에 그는 방관자나 구경꾼일 수밖에 없었다. 윤은 하숙집 아들 성호가 그 아버지의 이데올로기 속으로 빠져들어 순교자로 나서는 모습에 당황하게 된다. 소설은 윤이 성호의 이데올로기적 영웅 이철을 향해 권총을 당기는 것으로 끝난다. 성실과 정열을 가지고 그 무엇인가를 이루려 했던 젊은 주인공을 향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에게는 깃발이 없었다. 그러나 값싸게 높이 내어 흔들어진 어떠한 깃발보다도 그에게는 보다 훌륭한 보이지 않는 깃발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지금도 이 소설의 한 구절,"그에게는 깃발이 없었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깃발은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이데올로기는 기껏해야 미래 지향의 주장이다. 그것은 '지식인의 아편',또는 '정치가의 구호'이며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욕망에 따라 배분받는다"는 러시아 공산주의 정부도 1937~1938년 대숙청기에 무려 150만명을 처형했다.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자행한 만행이다.
이데올로기는 추종자들로 하여금 깃발을 들게 한다. 이데올로기의 깃발은 이긴 자에게는 영광,진 자에게는 회한을 안겨줬다. 사람들은 그 깃발을 따라 달린다. 깃발의 색깔도,방향도,기수도 묻지 않은 채 그냥 내달린다. 이데올로기의 깃발은 언제나 지도자를 위한 충성서약의 표시다. 깃발이 지닌 붉은빛,푸른빛은 지도자를 위한 치장이다. 깃발을 든 기수의 땀방울도,핏빛 자국도 결국은 그 깃발이 떠받드는 지도자를 위한 희생의 맹세일 뿐이다. 해방 후 현대사를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이데올로기의 깃발이 휘날렸다. 좌우의 깃발,통일조국을 위한 깃발,6 · 25 전쟁의 피 묻은 깃발,권위주의에 맞섰던 자유의 깃발,산업화의 깃발,민주화의 깃발,민중주의의 깃발….이들 깃발 중 어떤 것은 세상을 요동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희생과 눈물을 감수했다. 그렇지만 그 깃발이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켰던 적은 없었다. 빛바랜 깃발 덕분에 몇몇 사람만이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깃발은 '그들만을 위한 깃발'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를 분열로 내몬 그 깃발을 여전히 우리의 미래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국가적 문제들이 이념화되며 투쟁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깃발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우리 앞에는 가슴을 열고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념갈등에 사로잡히면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이 설 자리를 잃는다. 깃발의 갈등에서 벗어나야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 발전적 미래를 열어가는 자유로운 '공론의 장'을 펼칠 수 있다. 그래야만 '그에게는 깃발이 없었다'는 소설 속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진영 < 국회의원 ychin21@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