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의 EU 채권 매입 고민 "최대 시장 모른 척 할 수가…"

경제학자들 "리스크 너무 커…매입 반대" 압박
원자바오 총리-왕치산 부총리도 의견 엇갈려
유럽의 재정위기가 점점 악화되면서 중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럽은 3조달러가 넘는 외화자산을 보유한 중국에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중국도 최대 수출시장인 유럽이 어려워지면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큰 타격을 받게 돼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파산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의 채권을 선뜻 사들이기에는 위험이 너무 커 중국 내부에서도 불가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14일 랴오닝성 다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 참석,"유럽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면서도 "각국의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해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왕치산 "달콤한 말을 경계해야"

지난주 영국을 방문한 왕치산(王岐山) 중국 부총리는 현지에 있는 중국 경제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영국인들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했다. 서구 국가들이 중국의 경제성장을 찬양하면서 세계 경제를 위해 돈을 풀라고 유혹하고 있는 데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15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왕 부총리는 "영국인들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며 "그러나 그들의 진의를 잘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는 자기만족에 빠져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과거 미국과 영국이 성장 과정에서 경험했던 여러 문제들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유럽 국가들의 요청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성장률 둔화와 물가상승,빈부격차 등 내부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이 유럽에 '통 큰 지원'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중국의 유력 경제학자들도 이날 중국 정부가 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사지 말아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리다오쿠이(李稻葵) 칭화대 교수는 "현 시점에서 유럽 국가의 채권을 사는 것은 현명한 투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위융딩(余永定) 전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유럽이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아닌 기업에 투자할 수도

유럽은 중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중국의 수출액 중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다. 중국이 유럽의 위기를 마냥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국제금융전문가인 자오칭밍(趙慶明)은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환보유액의 투자는 단순한 수익뿐 아니라 전략적 의의도 고려해야 한다"며 유럽 국가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날 장샤오창(張曉强)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이 "중국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유럽 채권을 살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정위기 국가의 국채 리스크가 매우 큰 만큼 해당 국가의 기업에 투자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천신(陣新) 중국사회과학원 유럽연구소 경제연구실 주임은 "재정위기 국가들의 자산은 리스크가 있지만 이들 국가의 풍력 등 일부 산업은 경쟁력이 있다"며 "중국이 이들 국가의 첨단산업에 투자하면 기술 획득과 자본 이득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