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더블딥까지 안 갈 듯…경제 살리려면 더 큰 부양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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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금융전문가들이 보는 세계경제 - 긴급 좌담회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불확실한 시장의 최전방에 서 있는 조타수들이다. 누구보다 거시경제의 흐름과 시장의 미래에 대해 민감한 촉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월가의 내로라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한자리에 모아 긴급 좌담회를 가진 건 세계경제 위기론의 실체를 진단해보기 위해서다.
2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5번 애비뉴의 한 헤지펀드 사무실에 모인 5명의 매니저들은 유럽의 부채 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각자 온도차는 있었지만 저금리 추세가 장기화되면서 결국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란 전망도 비슷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뉴욕 본사에서 파트너를 지낸 조형택 앤스롭제이드릴 대표가 이날 좌담회의 사회를 맡았다. ▼조형택 대표=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투자자들의 가장 큰 우려는 미국과 유럽의 부채 위기다. 2008년 금융위기가 국가 부채 위기로 전이됐다. 특히 최근에는 유럽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스 등 몇몇 국가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것으로 본다. 유럽 부채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스티븐 아인혼 부회장=유럽의 부채 이슈는 당초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스는 유로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도 안 된다. 15개월 전에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정부들이 재정 지원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머뭇거리며 느리게 대응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국채 매입을 중단하면 안 되는 시점에 멈췄다. 그 결과 문제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으로 전염됐다. 나는 그리스가 디폴트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그들은 약속한 긴축정책을 실시할 것이고 자금 지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 주식시장은 경제 펀더멘털보다는 정치인과 중앙은행의 정책 대응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이런 경우 보통 주식시장은 부정적으로 움직인다.
▼앨버트 워즈니로어 수석 이코노미스트=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15개월 동안 잘 대처하지 못한 유로존 정부와 중앙은행이 앞으로 잘 해나가리라 확신하기 어렵다. 그리스 등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결국 채무재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유럽 문제에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다. 유로존은 선천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고,그 질병은 관리될 수는 있어도 완치될 수는 없다. 언어와 문화,역사가 다른 국가들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 실수다.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도 유럽 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어느 한 국가에 대해 투기세력이 공격을 시작하면 너도나도 벌떼처럼 공격에 가담한다. 그러면 아무런 근거 없이 시장이 요동친다. ▼조 대표=1980년대 멕시코가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JP모건체이스는 멕시코 부채를 상각했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은 반대했지만 JP모건은 멕시코 채권을 상각해도 끄떡없을 만큼 강했고 자신들이 손해를 감수함으로써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 현재 유럽에는 당시 JP모건과 같은 역할을 할 은행이 없는 게 문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고용 창출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어떻게 평가하나.
▼알렉스 포터 대표=충분치 않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경기침체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과 벤 버냉키 Fed 의장의 대응은 한심한 수준이다. 우리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더 큰 규모의 부양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소비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리는 제로다. 정책적 수단이 제한돼 있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곧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100만명의 고용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오바마와 버냉키는 솔직히 미국 경제가 심각한 문제에 처해 있다고 인정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자고 설득해야 한다.
▼조 대표=미국 경제가 더블딥으로 갈 것으로 보나. 나는 정부와 Fed가 더블딥에 빠지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워즈니로어 수석 이코노미스트=내년 대선까지 미국 경제가 위축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재정확대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재정은 이제 정치적인 이슈가 됐다.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하에서 경기가 살아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둘째로 통화정책에 있어서는 Fed가 안팎의 비난을 받더라도 완화를 강행할 것으로 본다. 그 결과 경제는 완만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딥이나 더블딥보다는 위축(contraction)이라고 부르고 싶다.
▼조 대표=미국 금융시장에서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걱정거리다. BoA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 다른 금융기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포터 대표=(미국 최대 모기지업체) 컨트리와이드를 인수해 부실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노출이 너무 큰 게 문제다. BoA는 앞으로도 몇 년 동안 모기지 때문에 고생할 것이다. 메릴린치를 인수한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메릴린치가 보유하던 부동산을 팔아치운 건 실수다. 50억달러는 받을 수 있는 부동산을 20억달러에 팔았다. 하지만 BoA 문제가 다른 금융사로 전염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조 대표=이렇게 불확실한 환경에서 투자자들은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스티븐 레이놀즈 CIO=불행하게도 채권시장은 저금리 함정에 빠져 있다. 그러다보니 대안투자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투자 대상으로 대표적인 것은 헤지펀드와 주식 등이다. 예컨대 연기금의 목표 수익률은 연 8%인데 채권 투자로 거둘 수 있는 수익률은 2~3%에 불과하다. 결국 주식시장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몰릴 수밖에 없다.
▼아인혼 부회장=투자 기간을 과거보다 길게 가져가고 동시에 미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여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일본이 초저금리를 수년 동안 유지했지만 일본 주식시장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저금리 자체로 주식시장을 끌어올리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는 일본에 비해 역동적인가? 나는 그렇게 믿는다. S&P500 기업의 절반 이상은 만기 10년 국채 수익률보다 많은 배당수익률을 투자자들에게 가져다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만약 한 투자자가 6개월에서 1년 이상 장기 투자할 수 있고,건전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사업에 투자하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하는 기업을 고를 수 있다면 지금은 싸게 좋은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조 대표=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3년이 지났다. 월스트리트는 그동안 어떻게 달라졌나. ▼레이놀즈 CIO=레버리지(차입투자)와 자기자본거래 등이 사라졌고 사람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주식시장과 레버리지는 마약과 같다. 언젠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똑같은 문제가 다른 형태로 불거져 나올 것이다. 왜나하면 첫째 시장이 규제 당국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fudiciary),즉 고객을 보호하려는 정신이 금융공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1985년부터 서서히 죽어가다가 2007년에 완전히 사라졌다. 고객보호정신은 되살아나기 힘들다. 규제당국이 금융회사들의 도덕성까지 규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