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차를 찾지 못해 직접 포르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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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뉴스 - 질주의 대명사 '포르쉐'
다임러벤츠 엔진설계 담당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1931년 독립해 설립
낮고 웅장한 느낌의 엔진음, 제임스 딘 등 마니아층 형성
각종 대회 2만8000회 우승
"내가 꿈꾸던 차를 찾을 수 없어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페리 포르쉐)
독일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의 창업주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아들 페리 포르쉐가 했던 이 말은 '포르쉐 356' 개발의 배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48년 포르쉐의 1호 차량으로 등록된 이 미드십 엔진 방식의 스포츠카는 출시 한 달 만에 자동차 경주에 출전, 포르쉐 최초의 우승기록을 가져다줬다. 지금도 포르쉐는 '차가 아닌 꿈을 판다'고 강조한다. ◆제임스 딘,포르쉐 노트… 자동차 마니아들의 '드림카'
포르쉐는 1953년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내놓았다. 4기통 엔진을 장착한 550 스파이더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 차는 에덴의 동쪽,이유 없는 반항 등으로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자리잡은 미국 배우 제임스 딘의 애마로도 유명하다. 제임스 딘은 이 모델로 자동차 레이싱을 즐기는 스피드광이었다. 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 타던 차도 550 스파이더였다. 이 미드십 엔진 모델은 이후 '박스터'와 '카이맨'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포르쉐의 '모터스포츠 DNA'를 보여주는 것은 열쇠 구멍이다. 포르쉐는 모든 모델의 열쇠 구멍이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있다. 레이싱 드라이버가 왼손으로 열쇠를 꽂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기어를 조작, 출발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도록 한 것에서 유래한다. 포르쉐는 이외에도 대표 아이콘인 '911' 시리즈와 실용성까지 원하는 소비자층을 겨냥한 SUV '카이엔'과 4인승 스포츠세단인 '파나메라' 등을 내놓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포츠카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포르쉐 마니아들 사이에선 '포르쉐 노트(note · 음표 · 악보)'라는 말이 있다. 포르쉐의 독특한 엔진음을 일컫는 말이다. 고음 위주의 카랑카랑한 엔진음으로 유명한 마세라티와 다르게 낮게 깔리면서도 웅장한 프로쉐 노트는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요인 중 하나다. ◆'천재' 포르쉐 박사가 창업… 아들이 세계 4대 스포츠카 반열에 올려놔
포르쉐는 지난 62년간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를 비롯한 각종 모터스포츠에서 총 2만8000여번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포르쉐 창업주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이후 191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다임러벤츠사에서 엔진 및 서스펜션 설계를 담당하며 실력 좋은 엔지니어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31년 독립, 포르쉐 엔지니어링 오피스를 설립했고 1948년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와 함께 356을 내놓았다. 아버지 포르쉐는 1951년 세상을 떠났고 아들 포르쉐가 오늘날 포르쉐의 초석을 닦아 페라리,람보르기니,부가티와 함께 세계 4대 스포츠카 반열에 올려놓았다.
포르쉐를 말하면서 폭스바겐을 빼놓을 수 없다. 1934년 히틀러가 포르쉐 박사를 찾아와 국민차 계획을 주문했고 포르쉐 박사는 2년 만인 1936년 폭스바겐 비틀을 내놓았다. 히틀러는 이를 바탕으로 국영 자동차 기업을 설립했고 이것이 오늘날 유럽 최대 자동차메이커인 폭스바겐이 된다. 포르쉐 박사는 1945년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1급 전범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포르쉐는 1990년대 초반 판매 부진으로 경영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대표모델인 911과 함께 포르쉐 최초의 SUV인 카이엔과 파나메라의 선전으로로 이를 극복해냈다. 포르쉐는 2007년 폭스바겐그룹의 지분 35%를 인수했고 2009년 이를 51%로 늘리며 인수를 목전에 두고 있다. 연간 10만대를 생산하는 '다윗(포르쉐)'이 700만대를 생산하는 '골리앗(폭스바겐그룹)'을 삼키며 명실상부한 자동차 왕국을 세운 것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