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적합업종 졸속 선정 '마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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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내비·재생타이어…"대기업 나가라" 종용
동반성장위, 27일 발표…"일단 정하고 보자" 밀어붙여
동반성장위원회가 1차로 30개 안팎의 중소기업 적합품목을 선정,27일 발표하기로 한 가운데 대기업과 중견 · 중소기업,중견 · 중소기업 사이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 간 마찰이 줄을 잇는 데도 시한을 정해 놓고 "일단 정하고 보자"는 식의 밀어붙이기 행정이 계속되고, 규제를 적용할 '대기업' 기준을 놓고도 막판까지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중소기업들 피해 없을까중소 내비게이션 업체인 모비딕 관계자는 "현대모비스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해 받는 100억원의 매출에 의존해 살아가는데,대기업이 철수하면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비게이션이 중기 적합업종에 포함되면 시장 지배력이 큰 한두 개 중소기업을 뺀 모든 소기업이 공멸한다"고 꼬집었다.

내비게이션은 아이나비로 유명한 팅크웨어와 파인드라이브를 만드는 파인디지털이 70%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나머지를 OEM 방식으로 진출한 현대모비스와 삼성 계열 서울통신기술 등이 차지하고 있다. 모비딕 등 후발사들은 대기업이 사업을 포기하면 반사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아예 도산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이 때문에 파인디지털에 중기 적합업종 신청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지만,논의가 재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LG생활건강이 사업을 접기로 결정한 고체형 세탁비누 분야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소규모 세탁비누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이 철수하면 그 시장을 후발 중소업체가 아니라 이미 독점적 지위에 있는 다른 중소기업이 차지해 후발주자들은 더욱 어려운 환경에 놓인다"고 전했다. LG생활건강의 연간 세탁비누 매출액은 15억원으로 점유율이 4%에 불과하고 중소기업 무궁화세탁비누가 전체 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도 '어부지리'

동반성장위는 사업이전 등의 현실적 문제를 고려,일부 대기업에 대해선 추가적인 사업확장 금지 등의 방식으로 손발을 묶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 등의 재생타이어 사업과 삼성,LG,SK 등이 진출한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등이 대표적이다. 산업계에서는 국내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계 기업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LED 조명은 대표적인 친환경 녹색성장 및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인데도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인위적으로 규제하면 일반 조명 시장과 같이 오스람,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 제품이나 중국 저가 제품에 시장이 빠르게 잠식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과 협업체제를 구축한 많은 중소기업들도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 계열의 아사아블로이코리아가 대주주인 아이레보가 4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디지털도어록 부문과 글로벌 정보기술(IT) 강자가 즐비한 데스크톱 PC 시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치와 김 등의 분야에선 중소기업들이 "무조건 대기업은 철수하라"고 주장하고 있고,관련 대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레미콘 업종도 기업 간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는데도 동반성장위에서 합의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수/정인설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