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가을편지

노학영 < 코스닥협회장·리노스 대표이사 hyroh@kosdaqca.or.kr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최양숙의 노래 '가을편지' 앞구절이다. 가을이 되면 대부분의 중 · 장년층이 한번쯤 불러보고 싶어하는 노래일 것이다.

필자의 아내도 가을만 되면 왠지 쓸쓸해진다며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내가 노래를 부르면 "결혼한 여자가 누구에게 편지를 한다는 거야?"하며 눈에 힘을 주고 아내의 얼굴을 쳐다본 기억이 난다. 선선한 바람을 쐬며 흩어지는 낙엽을 볼 수 있는 가을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여자인 아내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진 않지만 가을편지 가사에도 유독 여자들의 외로움을 표현한 부분이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다른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봄날의 화사함과 여름날의 열정이 떠나자 이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만 바라보고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감상을 살짝 지나쳐 버리고 어느새 겨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여러 선배들은 가을이 오면 회한을 느낀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전에 한창 바쁘고 건강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낙엽을 밟으며 걸어보는 시간을 좀 더 가질 걸…'하고 말이다. 지금은 걷고 싶어도 다리가 불편해서,아니면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어서…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하니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필자는 몇 해 전에 남이섬 성공신화를 일궈낸 강우현 대표의 강연을 듣고 남이섬을 방문했다. 이른 아침에 강변을 걸으며 밤새 떨어진 낙엽을 밟았고 동트는 햇살과 물안개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을 봤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풍경이었다. 그 후에도 가을이면 아내와 함께 주말에 그곳을 찾아간다. 나무와 강변이 어우러진 확 트인 풍경은 언제나 도심의 답답함을 떨쳐내 준다. 더욱이 창문을 열고 아침 물안개를 바라보며 '가을편지'를 색소폰으로 연주하다 보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아간다. 아내의 잔잔한 미소와 감사의 인사를 받을 때는 참 행복하다.

일상의 틀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가을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는 모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친구들 중 가장 많이 가족여행을 떠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 모두의 부러움을 산다. 어떻게 가능할까? 옆에서 지켜보니 마음의 여유와 계획적인 삶의 방식 덕분이었다. 가족과 함께 할 주말여행을 몇 개월 전에 계획한단다. 불가능한 시간들 속에서 여유 있는 삶으로 바꾸는 힘! 그것은 바로 계획적인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로 접어들었다. 푸른 잎들이 여름날의 뜨거움과 고달픔을 견디고 형형색색의 낙엽이 돼 길가는 여인들의 발등을 스쳐지나갈 것이다.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아내)가 되지 않게 소박하게나마 가을여행을 계획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