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수금 달랬더니 "그걸 받으시게요?"…수임료 계산 방정식

법조계 현장스토리 - 金 검사 & 李 변호사

사건 기껏 이겨놨더니 의뢰인 휴대폰 바꾸고 '잠수'
정치인 "정적 구속 부탁"…거액 수임료 제시하기도
중소 규모의 A법무법인은 몇 달 전 한 신축 아파트 주민들이 시행사를 상대로 내는 허위 분양광고 소송의 수임 입찰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가구당 착수금 25만원,성공보수 10%를 제시했다.

주민들이 "다른 경쟁 로펌들은 더 싼 가격을 제시한다"며 수임료 인하를 요구했고,A로펌은 착수금 15만원,성공보수 8%로 깎았다. 프레젠테이션 결과 법률 대리인으로 선정돼서도 추가 인하 요구가 잇따랐다. 수임료의 10% 규모인 부가가치세를 빼달라고 해 제외했고,아파트 감정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였다. 인지대 비용까지 떠안았다. 주민들이 나중에는 착수금을 10만원으로 깎아달라고 요구하자 "그러면 사건을 맡지 않겠다"고 버텨 추가 인하를 겨우 막았다. 최근 사건 하나를 승소해 364억원을 번 변호사의 '성공사례'가 화제였다. 이 변호사는 대구 주민 8만여명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비행장 소음피해 800억원 규모 소송을 진행, 두둑한 성공 보수를 챙기게됐다. 많은 변호사들이 이런 '대박'을 꿈꾸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법조 시장이 불황을 겪으면서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수임료 인하 경쟁이 뜨겁다.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거나 아예 내지 않으려는 의뢰인들과의 다툼도 잦다.

◆수임료는 커녕 상대 변호사 비용까지

변호사 수임료는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나뉜다. 착수금은 처음에 사건을 맡으면서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받는 돈.성공보수는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인센티브로 받는 돈이다. 요즘은 착수금을 안 받고 사건을 맡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집단소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B법무법인은 1심부터 3심까지 착수금 없이 사건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소하면 소송가액의 25%가량을 성공보수로 받는 조건이다. 패소하면 3~5년 일하고서도 수임료를 한푼도 못받는다. 인지대에 쓴 돈은 고스란히 나가고 소송 상대방 측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줘야 한다. B법무법인 관계자는 "요즘은 다른 법무법인에서도 의뢰인들이 착수금 이야기가 나오면 '그걸 받으시게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착수금을 받았다가 의뢰인의 일방적 요구로 돌려주기도 한다. 부장검사에서 전업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P변호사는 최근 폭력사건 피의자가 "구속이 안 되도록 해달라"고 부탁해 착수금 700만원에 수임했다. 이 의뢰인은 나흘 만에 다시 찾아와선 "이리저리 알아보니 아무래도 구속은 피하기 힘들겠다"며 착수금을 도로 내놓으라고 사무실 앞에서 큰소리로 떠들었다. P변호사는 "개업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나쁜 소문을 낼 수도 있겠다 싶어 아무 말 안하고 돌려줬다"고 털어놨다.

◆사건 이기니 의뢰인이 전화번호 바꿔성공보수를 떼이는 경우는 다반사다. 2,3개월 뒤에 주겠다고 해놓고선 그때 가서 연락하면 아예 전화번호를 바꾸거나 해서 연락이 두절된다. 일부 변호사들은 떼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공보수를 선불로 받기도 한다. 소송에서 지면 돌려주는 조건이지만 이는 변호사법 위반이다. 개인 변호사 J씨는 "조폭이나 외국인은 특히 성공보수를 떼먹는 사례가 많아 법을 어겨서라도 미리 받아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임료 문제가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착수금 3000만원을 받고 한 형사사건 항소심을 맡았다. 1심에서 징역 3년이 나온 이 사건에서 무죄를 받으면 추가로 성공보수를 받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도 법원의 판결은 달라지지 않았다. 의뢰인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을 경우에 3000만원을 주기로 약속한 것이었다"며 수임료 반환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그런 약정은 없었다"며 기각했다.

◆수임료 400만원, 감정평가 3000만원법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형 로펌 사이에서도 저가 수임 사례가 눈에 띈다. C로펌 변호사는 중소 여행사 관련 소송에 입찰하면서 대형 사건만 취급하고 고가 수임료로 유명한 국내 굴지의 D로펌이 참여한 사실을 알게 됐다.

C변호사는 "예전 같으면 D로펌에서 쳐다보지도 않았을 사건이었다"며 "D로펌은 우리 로펌보다 오히려 적은 액수를 불렀는데 입찰에서 떨어졌다"고 귀띔했다.

기업의 이사 격인 구성원 변호사들은 1년에 일정 규모 이상 사건을 수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것 같으면 '덤핑'이라도 한다.

변호사 30여명 규모인 한 중소 법무법인의 구성원 변호사들은 1년에 수임료 3억8000만원 이상의 사건을 가져와야 한다. 대형 로펌에서는 7억~9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보수를 더 많이 받는 다른 분야 전문가들 때문에 변호사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K변호사는 "부동산 하자 문제로 400만원짜리 소송을 의뢰받았는데 감정평가사의 감정 비용은 3000만원이 나왔다"며 "정말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구속만 면하게 해달라며 10억원 제시

의뢰인들이 모두 수임료에 인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구속만 면하게 해주면 수억원대의 성공보수를 약속하는 '통큰' 의뢰인이다.

전관 출신 변호사 사무실 소속 관계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치인들은 긴말 하지 않고 '일단 구속은 면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며 "불구속 기소되는 조건으로 성공보수만 수억원으로 계약한다"고 귀띔했다. 정적을 구속시켜 달라고 거액의 수임료를 제안하며 '검찰 로비'를 의뢰해오는 정치인도 있다.

임도원/이고운/김병일 기자 van7691@hankyung.com

강호동 구입한 땅
맹지인것 숨겼나

초봉 겨우 月300
"출세 지름길 옛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