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레임덕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재선 직후 터진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지지율이 40%대로 뚝 떨어졌다. 불법 무기를 이란에 팔아 조성한 돈을 니카라과 우익단체에 지원한 사실이 밝혀진 탓이다. 레임덕(lame duck)은 고사하고 데드덕(dead duck)이 됐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레이건은 잘못을 시인하고 국정쇄신에 나섰다. 12.5%의 인플레와 7.5%의 실업률,높은 국가부채 등으로 시들어가던 경제를 살려냈다. 군사력 강화를 통해 냉전도 종식시켰다. 퇴임 때 지지율은 취임 때보다 높은 63%에 달했다.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은 더 극적이다. 2005년 집권당이 야당 의원들을 매수했다는 의혹과 함께 비리가 탄로나면서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다.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은 물론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노선을 고수했다. 집권 초 12%가 넘던 물가 상승률은 4%대로 낮아졌고,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5%를 넘었다. 170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도 2000억달러로 불었다. 퇴임 전 지지율은 무려 87%까지 치솟았다. 레임덕이란 말은 미국 남북전쟁 무렵부터 쓰였다. 임기 말 대통령이 정책의 일관성 없이 절뚝거리는 오리처럼 흔들린다는 뜻이다. 국정 장악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도 갖는다. 레임덕을 피하는 건 쉽지 않다. 소신과 이념 없이 정책을 펴다 보면 반대파에 휘둘리게 되고 공직 기강이 풀리기 때문이다. 측근 비리도 한몫 거든다. 클린턴 이전 미국 재선 대통령 18명 가운데 레임덕을 이겨낸 이는 워싱턴, 아이젠하워, 레이건 등 6명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우리 대통령도 대부분 레임덕에 시달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권위에 금이 가면서 영(令)이 서질 않는다. 일부 친이계를 제외하고는 여당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관가에서도 장 · 차관 등 정무직 외엔 선뜻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김두우 신재민 등 측근들의 비리의혹까지 터지면서 청와대가 무장해제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1년 반의 남은 임기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다. 세계경제위기에서부터 북한 변수까지 사방이 지뢰밭이다. "그럴줄 알았다"며 소 닭보듯 할 일도 아니다. 나중에 골탕먹는 건 결국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레이건처럼 데드덕에서 '역전'을 일궈낸 대통령을 우리도 보고 싶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