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물만두 대신 군만두 드시라는 정치판

선거 때면 등장하는 후보 단일화
유권자선택 방해…민의 왜곡시켜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각종 선거에 색다른 특징이 있다면,단연 후보단일화다. 선거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끼리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하나로 정리되는 단일화는 하나의 정치적 관행처럼 굳어져 왔을 뿐 아니라 정치적 미덕(美德)으로 칭송받고 있기까지 하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단일화 필수론,당위론,예찬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단일화는 국민의 명령"이라는 말도 난무하는가 하면,단일화를 위해 양보한 후보에게는 "대승적 결단이다"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라는 식으로 말의 성찬도 화려하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여권,야권을 막론하고 여러 후보 중 하나를 만들어 상대방 후보와 겨루고자 하는 움직임이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왜 이처럼 여야가 후보 단일화에 목매다는 것일까. 후보 단일화가 선거 전략과 선거공학의 관점에서 저항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승리를 위한 이보다 더 확실한 세몰이가 어디 있으며,언론과 유권자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이보다 더 멋진 흥행 이벤트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차분하게 후보 단일화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지난번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 사태'는 우연히 터진 것이 아니라 단일화의 과정에서 그동안 곪은 것이 터진 표본적 사태이기 때문에 "올 것이 왔다"는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금전적 거래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없더라도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정치권에서 유행하고 있는 후보 단일화는 '정책 단일화'가 아니라 '인물 단일화'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가치와 이념,정책의 요소들이 배제된 '묻지마' 식 단일화이기에 오로지 권력 의지와 승리가 만능이라는 식의 '승리 이데올로기'만 판치기 때문이다. 가치든 정책이든 상관없이 "이기고 보겠다"는 권력지향적 발상은 정치와 선거를 속물화하는 주범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우리 한국 정치가 언제까지나 삼류를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후보 단일화의 가장 커다란 아킬레스건(腱)은 유권자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제약한다는 점이다. 유권자에게 자신이 원래 마음에 두었던 후보자 대신 마음에도 없는 다른 후보자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국집에 가서 물만두를 시켰는데 군만두가 나온 상황과 비슷하다. 이때 항의하는 고객에게 주인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같은 만두이니 드시라"고 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 것인가.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갑'이라는 후보를 좋아하는데 그가 갑자기 사라지고 '을'이라는 후보를 찍어야 한다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유권자의 속마음과는 다른 선택이 대규모로 강요되는 경우,어떻게 진정한 민의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크고 작은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는 참담한 '뒷돈 거래'나 뭉칫돈이 오간 '이면 계약' 등 그 추악한 내면도 볼썽 사납지만,그런 저질스러운 것이 없다고 해도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는 데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선거민주주의의 기본질서,즉 선거에서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이른바 '정치 거간꾼들'이 원천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장에서 독과점 업자들이 상대방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합병한 뒤 특정 브랜드의 상품만을 사도록 강요하는 행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평양감사도 저 싫다면 그만인데,왜 우리 유권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억지춘향'처럼 원하지도 않는 후보에 대해 투표해야 하며,'울면서 겨자를 먹는 상황'처럼 마음으로 내키지 않으면서 기표소에 가야하는가. 바로 그것이야말로 후보 단일화의 가장 큰 병폐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은 무감각하다. 그런 상황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거리낌없이 재현되고 있다는 데 대해 참으로 유감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