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광기의 역사 끝내려면 '과잉 自我'를 버려라

자아폭발-타락 ㅣ 스티브 테일러 지음 ㅣ 우태영 옮김 ㅣ 다른세상 ㅣ 464쪽 ㅣ 2만2000원

전쟁·환경재앙, 이기심서 비롯…삶의 공동체성 되살려야

"캐나다 북부지방에 사는 코퍼 에스키모족은 자신감에 찬 경쾌함과 쾌활한 낙관주의를 보여주는데,이는 함께 사는 외부인들조차도 기쁘게 한다. "(엘먼 스미스) "중앙아프리카 피그미족에 삶이란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며 근심 걱정이 없는 대단한 것이다. "(콜린 턴불) "남아메리카 타우리파 인디언들은 내가 본 이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진 리들로프)

문명과 거리를 두고 원시에 가깝게 사는 원주민들이 문명사회 사람들보다 평정심을 갖고 더 만족감을 느끼며 산다는 인류학자들의 기록들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문명의 발전으로 인류는 물질적 풍요와 지적 · 기술적 진보 등 많은 것을 얻게 됐다. 반면 전쟁과 테러,억압과 불평등,물질주의,환경훼손과 같은 병리현상도 함께 나타났다. 현대 인류가 겪고 있는 사회 병리현상이 나타나게 된 계기는 뭘까.

《자아폭발-타락》은 이런 문제들의 근본 원인을 '과도하게 발달된 자아'에서 찾고 있다. 저자인 영국의 심리학자 스티브 테일러는 "지난 6000년 동안 인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 왔다"며 "이러한 모든 광기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자아폭발'"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아폭발을 '타락'이라고 지칭하며 인류가 걸어온 길을 '진보'가 아닌 '퇴보'로 인식한다. 자아폭발 이전의 인류가 훨씬 정상적인 삶을 살았고,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인류 집단의 정신에 변화가 발생한 시점을 약 6000년 전인 기원전 4000년께로 봤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가뭄 등 기후 변화로 생존은 더욱 어려워졌고,주민들 사이에선 '개인성'에 대한 날카로운 자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환경 변화는 사냥법이나 농경법 등 새로운 종류의 지능과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요구하게 된다. 반면 곤궁해진 삶은 공동체의 관점보다는 자신의 필요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이기심이라는 새로운 정신을 고무시켰다고 설명한다.

공동매장의 오랜 관행이 개인매장으로 대체되고,기록과 명문(銘文)들에 사람들의 이름과 발언 등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자아에 대해 강하고 예민한 인식을 발달시킨 역사적 순간이다. 저자는 이렇게 자아가 급속도로,과도하게 발달한 '자아폭발'이 고독과 죽음의 공포 등 정신적 고통을 가져왔고,이런 정신적 불화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쾌락과 물질주의 등을 추구하게 됐다고 강조한다. 전쟁이나 남성지배,억압 등도 자아폭발 이후 나타난 역사적 발전의 결과로 분석한다.

책은 원주민 문화에는 구석기 · 신석기인들처럼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는 데 주목한다. 전쟁,불평등,성과 육체에 대한 적대감,부성선호적인 특성들이 없다는 것.저자는 "원주민들은 과도하게 발달된 자아가 없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과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않는다"며 "자연환경과의 조화,각 집단 간에 조화를 이루는 정신을 충만하게 가지고 있어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영위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원시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폭넓게 되짚으며 자아폭발이 발생시킨 문제점을 진단한다. 하지만 문명사회의 병폐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원시적 삶을 맹목적으로 예찬하지 않는다. 고고학과 인류학에 대한 여러 책과 학술 논문을 통해 인류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제시한다.

저자는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 역사를 채웠던 광기로부터 천천히 벗어나는 진화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가 등장하고 남녀가 평등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으며,자연과 육체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되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타락 초월'을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있다면 이러한 광기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