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유로화를 구할 마지막 기회

남유럽국 부채갚을 능력 없어…디폴트 통한 개혁만이 해법

존 커크레인 <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제


유럽국가들의 채무에 대한 논의는 항상 구제금융과 유로체제의 붕괴 등 두 가지 대안을 놓고 진행된다. 사실 유로와 유럽 경제가 강해지려면 부실국가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허용해야 한다. 유로화를 구할 수 있는 기회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 등의 부채를 책임지고 있다. 은행에 대한 규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디폴트가 되면 ECB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독일과 다른 국가들은 수조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ECB 자본재확충에 투입할 것인가와 유로 및 유럽연합(EU) 체제 붕괴를 두고 볼 것이냐를 놓고 끔찍한 선택을 해야 한다. EU국가들의 세금으로 충당될 유로본드 발행계획이 제안됐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EU가 ECB의 자금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약속은 세수에서 충당될 것이기 때문이다.

ECB가 담보를 확보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실채권을 사들여 고품질 채권을 팔기 때문에 이 과정을 통해 부실채권이 정리되고 유로화 체제가 건실해질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ECB에 제공된 담보는 각국의 채무다. 위기를 맞은 각국에 자금이 대출되는 날 증발될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ECB가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려면 자산이 확보돼 있어야 한다. 결국 ECB의 금고가 비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유로화를 버릴 것이다.

유럽의 가장 큰 문제는 나쁜 아이디어를 계속 내놓는 데서 나온다. 최근 시장의 동향은 유럽의 조치가 비유동적이고 원론적이며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지만 유럽은 경제위기의 본질을 도려내기보다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데에만 주력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중 빵값이 오르자 프랑스 사람들은 제빵업자들을 단두대로 보냈고 프랑스인들은 더 큰 인플레이션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후손은 국채가격이 하락하자 매도를 제한하는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 남유럽 국가들은 부채를 갚을 능력이 없다. 차라리 그리스와 남유럽 국가들의 디폴트를 허용하는 편이 낫다. 과거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봤을 때 남유럽 국가들은 곧 다시 손을 벌릴 것이다. 그들은 긴축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디폴트를 통한 대대적인 개혁만이 이들 국가의 성장과 부채 상환을 가능하게 할 대안이다.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개혁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ECB를 통해서가 아닌 시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유로와 그들의 경제 공동체는 유지돼야 한다. 반면 그리스는 자국 화폐체제로 복귀해 시장의 통화 절하를 겪으며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유럽재정위기로 인해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로화 체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방법은 ECB가 국가채무에 대한 책임에서 비켜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

◆이 글은 존 커크레인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유로화를 구할 마지막 기회(Last chance to save the Euro)'라는 제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