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건축심의…'헛돈'만 늘어난다

심층리포트 - '슈퍼갑' 건축심의위원, 말 한마디에 재개발 사업 8개월 지연
서울 서대문구의 한 재개발조합은 서울시 건축심의를 다섯 번 만에 통과했다. 심의 신청 후 통과까지 8개월이 걸렸다. 조합 관계자는 "매번 새로운 심의위원이 참석해 동 배치를 바꿔라,외관을 특화하라,옥상 구조물을 단순화하라는 애매한 의견을 내놔 통과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설계비 조합운영비 대출이자 등으로 수십억원의 추가 부담이 생겼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전문가 자문을 통해 건물의 공공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운영하는 건축심의가 위원들의 모호하고 주관적인 심의로 건물 신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20일까지 서울시 건축위원회가 심의한 112건 중 44건이 재심 통보를 받았다. 유보 1건,조건부 보고 11건을 합치면 절반이 보류된 셈이다.

보류 안건 중에는 심의 과정에서 옥상 조형물이 단순해지고 조경도 자연스러워져 조합원들이 만족해하고 있는 역삼동 개나리6차 재건축단지 등도 있지만 상반된 심의 결과로 사업자들의 불만을 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 은평구의 한 재개발조합은 지난 7월 '외관을 가급적 단순화하라'는 심의 결과를 받았다. 수정한 건축계획에 대해서는 지난 8월 '더욱 발전한 평면 · 외관 · 색채 계획안을 제출하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합 관계자는 "9월 심의 때 통과됐지만 지적 사항을 보완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주관적인 심의도 사업 차질 요인이다. 서울 종로구에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인 한 개발업체는 '조경을 자연스러우면서 은유적인 디자인으로 계획하라'는 결과를 통보받고 수정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심의를 빨리 통과하기 위한 로비는 각종 비리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울산시에서는 건축심의위원인 시의원 L씨가 업체들로부터 5억7000만원 상당의 미술장식품 설치권을 따내고 건설사로부터 2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서울시 건축심의위원을 지낸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 심의는 건물의 공공성과 도시미관 향상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주관적 판단으로 사업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많아 사전심사 등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건축심의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 인 · 허가에 앞서 도시미관 향상,공공성 확보 등을 따져보는 것이다. 건축 전문가들과 담당 공무원으로 이뤄진 건축위원회가 건축주의 설계도를 놓고 설계 · 디자인 보완사항,건축법 위배 등을 확인한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