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C 동자승 어깨에 웬 천사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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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랑추랑 - 정석범의 재미있는 미술이야기(9)
미란 벽화 속의 수수께끼
사막 사찰터에서 벽화 발견
불교·기독교 문화 결합 산물
비단길 통한 교류 흔적 곳곳에
1907년 3월 중앙아시아의 유적지를 탐사 중이던 영국 고고학자 오럴 스타인은 타클라마칸 사막 동쪽에 있는 미란의 유적지에서 매우 흥미로운 벽화를 발견했다.
삭발한 동자승을 묘사한 것이었는데 커다란 눈에 오똑한 코로 보아 누가 봐도 중국인이나 티베트인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놀라운 것은 이 동자승의 양 어깨 위로 돌출한 날개였다. 기독교의 천사상에서나 볼 수 있는 이 낯선 모양새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벽화가 발견된 곳은 불교사찰 터였다. 중국과 서양의 교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이는 기원전 1세기 로마에 비단이 알려진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단은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그 촉감이 부드러운 데다 플리니우스의 말처럼 "벌거벗고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가벼웠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베일에 싸인 머나먼 동방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구미를 당기게 했다.
당시 로마제국에 유입된 비단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중앙아시아를 지나 파르티아인들의 손을 거쳐 전해진 것으로 오랜 여정과 그에 따른 위험부담,중간상인의 폭리 때문에 엄청난 고가에 거래됐다. 비싼 값에 물건을 팔 수 있다는 매력으로 실크로드는 갈수록 번성했고 그 루트를 따라 많은 도시들이 생겨났다. 둔황 서쪽의 오아시스 도시 미란도 실크로드 대상무역에 힘입어 기원전 1세기부터 카라반의 중간 거점으로 번성했다.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은 중국인들이 많았지만 서방 물건을 팔기 위해 건너오는 파르티아,인도인들도 적지 않았다.
방문객이 많다 보니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사찰이 대거 조성됐는데 현재까지 15군데의 사찰 터가 발굴됐다.
'날개 달린 동자승'은 제3사원 터에서 발견됐다. 이 벽화는 동양과 서양의 활발한 교류의 산물인 것이다. 사찰의 벽화를 그린 이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제국의 변방에서 건너와 전문적인 벽화제작 기술자가 없었던 사막 도시들을 돌면서 프레스코화를 그렸던 장인집단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타클라마칸 서쪽 끝에 자리한 호탄에서 발견된 불상머리의 양식이 이와 비슷한 데서 입증된다. 누란에서 발견된 모직물 잔편에 그려진 '헤르메스상'도 큰 눈과 두터운 윤곽선 등을 보여주고 있어 이들 장인에 의해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두 마리의 뱀이 엉켜 있는 지팡이를 든 헤르메스는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이끌어주는 신(神)인 만큼 이 벽안의 장인들은 주문자가 요청한 지장보살상을 자신들의 문화권에서 동일한 기능을 한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크로드는 오랜 옛날부터 동서 문명이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접촉했던 문명의 하이웨이였다. 낙타 등 위에 올라 이곳을 지나친 여행자들은 다양한 문명권을 넘나드는 가운데 문화에 대한 상대적 시각을 키웠고 이는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성으로 이어졌다.
동자승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다는 포용성.그것이야말로 실크로드가 2000년 넘게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지속할 수 있었던 진정한 힘이 아니었을까.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