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홀더+클립'…佛 메르시 "당장 공급해 달라"

'Designed in Korea' 시대 - (1) '경험'을 디자인 하라

30弗짜리 컵홀더, 3시간만에 1만5000弗 팔려
수술환경 고려한 '엑스레이', 동강의료기 매출 60억 급증
디자이너 김빈 씨(29)는 최근 세계 3대 디자인 전시회의 하나로 꼽히는 '디자인런던100%'에 컵홀더 '드링클립'을 출품,돌풍을 일으켰다. 드링클립은 작은 통에 클립 형태의 고정 장치를 붙인 형태로,책상이나 가구에 고정시켜 컵 홀더나 밥그릇 고정대,화분 진열대 등으로 쓰는 단순한 디자인 제품.하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30달러짜리 컵 홀더가 3시간 만에 1만5000달러어치 팔려 나갔고,프랑스의 디자인 트렌드를 이끄는 대형 유통업체 메르시(merci)와 대규모 납품 계약을 추진하기로 현지에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메르시 바이어 진 컬 콜름은 "특별한 기술을 적용하지 않고도 평소 컵을 엎지르거나 아이 밥을 먹일 때 불편함을 디자인만으로 완벽히 해결해냈다"고 평가했다.

'똑똑한 디자인'이 글로벌 산업계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지속 성장 키워드도 디자인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Made in Korea'를 넘어 'Designed in Korea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앞선 디자인이 브랜드 가치 만든다

음향 · 영상기기 '명품'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에서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는 뱅앤올룹슨과 날개 없는 선풍기,필터 없는 청소기 등을 디자인한 다이슨은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를 구축하고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대표적인 업체다. 이들 업체는 디자인을 통해 인간에 대한 따듯한 배려를 느끼게 하고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제품으로 승부를 건다. 뱅앤올룹슨 관계자는 "신제품에 어떤 기술을 적용할까 결정하기 전에 먼저 디자인 컨셉트를 잡는다"며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긴밀하게 소통하는 덕분에 디자인이 회사의 정체성을 만들고 기술을 향상시킨다"고 말했다.

디자인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영국에서는 이미 디자인 중심 철학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제품 개발 단계에만 디자인을 활용하는 한국 업체와 달리 이곳 기업들은 경영전략,시장 분석 단계부터 시작해 생산,유통 단계까지 경영 전 분야에 디자이너를 참여시킨다. ◆中企도 디자인으로 경쟁력 업그레이드

국내에서도 디자인으로 일찌감치 눈을 돌린 중소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동형 미니 소방차를 제조하는 진명21은 사용자 편의를 높인 디자인에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면서 양산 전 이미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 150억원어치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고,기존에 있던 디지털 엑스레이 제품을 수술실 환경을 고려해 다시 디자인한 동강의료기는 매출이 190억원에서 1년만에 250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영국 디자인진흥기관인 디자인카운슬 관계자는 "핵심 기술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디자인'이 기업을 살리는 핵심"이라며 "제품 개발을 포함해 전 경영 과정에서 디자인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국내 산업계의 디자인 인식을 낮은 상황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약 12%만이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어 영국(33%),프랑스(36%),스웨덴(75%) 등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국내 디자인 산업 규모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5조2000억원을 기록했지만,지난해에는 5조1000억원으로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28조원,미국 80조원,일본 25조7000억원 등 선진국들과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는 추세다.

김현태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은 "중국에선 한국 제조업을 뛰어넘을 매개체로 디자인을 보고 있다"며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산업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런던=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