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문가 집단 모럴해저드가 한국병 진원지다

서울시 건축심의가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심의위원마다 일관된 기준도 없이 자신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건물의 배치, 디자인, 조경, 옥상 구조물 등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라고 주문하기 일쑤라고 한다. 심의결과가 한 달 사이에 정반대로 뒤집힌 사례까지 나올 정도다. 게다가 한마디라도 지적이 나오면 통과가 안된다. 이러니 올해 심의된 안건 가운데 절반이 재심 또는 보류 대상이 된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로비와 검은 거래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비단 서울시 건축위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환경 교통 방송통신 문화재 등이 모두 마찬가지다. 위원회의 권한이 클수록 그리고 심의대상이 중요할수록 위원들의 입김은 세지고 부당 개입할 개연성은 커지게 된다. 그렇다고 사후 검증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위원들마다 자의적인 잣대를 휘두르더라도 책임을 지는 일은 없다. 이런 상황에선 위원수를 늘려봐야 헛일이다. 물론 사회이익 집단의 포위나 로비도 큰 문제다. 위원 명단을 공개하면 부조리가 극성을 부리고,익명으로 하면 이번에는 위원들의 독재와 전횡이 춤을 춘다. 회의는 중구난방식으로 쏟아지는 주문에 계속 겉돌고 로비 대상 인사풀만 확대될 것이 뻔하다. 모두 전문가들이 자기 절제를 잃은 탓에 빚어지는 일들이다. 이런 위원회들이 널려 있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다. 정치가 시끄러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가 위 아래 없이 점점 모럴 해저드에 깊숙이 빠져들어 간다는 점이다.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 변호사들 모두 다를 게 없다. 대기업을 비판하면서 뒤로는 기부를 받고 사외이사를 했던 사람이 "뭐가 잘못이냐"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정치판이다. 한국병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이런 일들은 정치 시즌이 깊어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당장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유력 대선 후보자의 캠프에 못들어가 안달이고 정치 입문 기회를 노리는 폴리페서들도 늘어만 간다. 약사나 변호사 집단은 국회를 흔들어댄다. 전문가 집단의 모럴 해저드가 한국을 망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