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바닥난 그리스 10월에만 40억 유로 국채만기 '시한폭탄'

꺼지지 않는 '그리스 공포' - 위기 5대 체크 포인트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의 도화선이 타들어가고 있다. 이달 중 40억유로 규모의 국채만기가 도래하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다음달로 또 미뤘다. 그리스 디폴트 우려로 뉴욕증시는 1년래 최저치로 추락했다. 유럽증시도 연일 급락세다.


(1) 그리스 디폴트로 가나…적자 감축 달성 실패 '최악 상황'그리스는 말 그대로 위기에 처했다. 이달에만 40억유로 규모의 국채만기가 돌아온다. 재정이 바닥난 그리스는 유로존의 1차 구제금융자금 중 마지막인 80억유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돈의 지급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기대됐던 오는 13일 특별회의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스 정부가 지난주 기습적으로 올해와 내년 적자감축 목표에 미달하는 예산안을 확정한 데 따른 조치다.

장 클로드 융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그리스의 구제금융 차기분 지급 결정은 트로이카(EU,IMF,유럽중앙은행)의 그리스 긴축이행에 대한 실사가 완료된 이후인 11월 중순에 재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구제금융 집행이 또 미뤄지면서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라보뱅크의 제인 포레이 전략가는 "금융시장은 그리스 디폴트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무질서한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11월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융커 의장도 그리스가 다음달까지는 채무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달까지 버틴다고 해도 오는 12월 80억유로의 채권만기가 돌아오는 만큼 빚으로 빚을 막는 돌려막기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란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
(2) 유럽안정기금 효과 있나…유럽위기 대처하기엔 크게 부족

유럽이 재정위기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방어 무기가 유럽재정안정기금(유럽기금 · EFSF)이다. 작년 5월 그리스 위기가 확산되자 각국이 서둘러 합의했다.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용되는 이 기금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 경제 규모 비율대로 자금을 출연해 4400억유로로 조성됐다.

이 기금으로 재정위기를 겪는 국가의 채권을 사주거나 직접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최근 유럽 각국 의회가 표결하고 있는 방안은 4400억유로 중 쓰지 못하게 묶어놨던 담보금 1900억유로도 위기국 지원에 쓰자는 것이다. 1900억유로는 기금이 발행하는 채권의 'AAA'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담보금이다. 실질 대출 규모를 2500억유로에서 4400억유로로 키우자는 의견에 지난주 최다 기금 출자국인 독일 의회가 동의했다. 만장일치의 원칙에 따라 다음주(11일) 슬로바키아 의회에서 처리해야 기금 사용금액 확충안이 확정된다. 그러나 슬로바키아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아 마지막까지 방심하기 어렵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당초 기금을 만들 때보다 위기의 범위와 규모가 커져 4400억유로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워서다. 이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기금의 자금을 활용해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하는 방안과 기금 규모를 2조유로로 확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자금출자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한 독일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3) 은행들은 괜찮나…그리스 국채 많은 獨ㆍ佛은행 비상

그리스 디폴트 문제는 글로벌 금융시스템과 직결된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인접 유럽 은행들은 물론이고 미국 은행들도 그리스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그리스 국채의 33%가량은 해외 채권자들이 들고 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비중 합계는 해외 보유분의 절반인 17%에 달해 충격이 불가피하다. 87억달러(10조3600억원)어치 그리스 채권을 갖고 있는 미국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스 디폴트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면 그리스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실물경제도 붕괴된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국채까지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유로존 전체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유럽 은행권의 위기는 그리스 2차 구제안과도 얽혀 있다. 유로존이 지난 7월 1090억유로 규모 2차 지원안을 확정했을 때 은행을 포함한 민간 부문은 그리스 국채의 21%를 손실로 떠안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그리스 정부가 올해와 내년의 재정적자 감축 목표치를 달성할 수 없다고 실토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장 클로드 융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지난 3일 "그리스 상황이 달라진만큼 민간 은행의 손실 부담(헤어컷)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추가 지원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4) 다른 나라는 안전한가…10월 국채 만기 몰린 PIIGS도 위험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다른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도 초비상이다. 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는 물론이고,이들 국가의 국채를 많이 갖고 있는 독일 프랑스에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특히 국채 만기일이 몰려 있는 이달이 위기의 분수령이다. 10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PIIGS 국가의 국채 규모는 총 468억5000만유로다. 유로존 3,4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이달에 각각 156억5000만유로,140억유로의 빚을 갚아야 한다. 이탈리아가 연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국채는 550억유로에 이른다. 두 국가는 지난달 27일 177억유로에 달하는 채권을 매각했지만 빚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유럽이 PIIGS 국가 구제를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늘릴 경우 독일과 프랑스의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


(5) 글로벌 더블딥 촉발하나…신흥국 자금 빼가면 위기 도미노

재정위기 발생 초기 단계부터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야 한다"는 진단이 적지 않았다. 재정위기가 발생한 근본 원인으로 경제력 격차가 큰 북유럽과 남유럽이 단일 통화를 사용해온 모순이 지목된 데다가 그리스가 독자적인 환율정책을 사용하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더라도 이미 복잡하게 연결된 글로벌 경제에 미칠 충격은 해소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와 관계없이 판이 커진 탓이다. 유럽과 미국 금융권은 그리스 국채에 거액이 물려 있고,글로벌 금융시장은 불안감이 지배한 지 오래다.

설상가상 금융권 자금경색은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EU 집행위는 올해 3분기 경제성장 전망치를 0.4%에서 0.2%로,4분기 전망치를 0.4%에서 0.1%로 각각 낮췄다. 7월 제조업 신규주문은 10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줄었다. 유럽 경제가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뒤 재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불황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높아졌다. 유럽 금융권이 자금 마련과 자본 확충을 위해 신흥국에 투자했던 자금 회수에 나서면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각국이 돈을 풀어 고비를 넘겼지만 이젠 풀 돈도 없다. 미국 역시 남에게 도움을 줄 처지가 아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