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리더’ 스티브 잡스 "결정적 선택에 가장 도움 준 것은…"

“나는 최고의 부자가 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우리가 정말 놀랄 만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합니다.”(1993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디지털 시대의 구루, 창의적 혁신을 실천한 위대한 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파란만장했던 짧은 삶을 마감했다. 향년 56세(1955-2011). 2004년 췌장암 선고를 받고 힘겹게 병마와 싸우면서도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고 말한 그였다. 애플은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하면서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 무한 혁신의 원동력이었다”며 “세상은 잡스 덕분에 혁신을 이뤘다”라고 애도했다.

잡스의 타계 소식에 국내 많은 유명인사와 네티즌도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의사이자 미래학자인 정지훈 관동의대 융합의학과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hiconcep)에 “뛰어난 경영자이자 꿈을 창조하는 비저너리, 강력한 실행주의자, 최고의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사상과 개념을 전파한 에반젤리스트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 거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으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최근 《오픈 리더십(Open Leadership)》을 번역출간한 정 교수는 오래 전부터 강연과 칼럼을 통해 인간과 기술의 소통방식을 바꾼 ‘혁명가’이자 비전과 열정을 공유한 ‘오픈 리더’의 본보기로 스티브 잡스를 인용해왔다. 오픈 리더는 소통과 공유로 참여와 협업을 이끄는 개방형 리더를 말한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혁신은 당신이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들과 얼마나 많이 소통하고 얼마나 많이 공유할 수 있는지, 혁신은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1998년 포춘 인터뷰)

그는 자신의 비전을 직원과 공유하며 타 제품의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조합했다. 그의 이러한 ‘오픈 리더십’은 수많은 기업의 인재 개발 방식에까지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전문기술 보유자 선발방식 벗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잡스의 56년 짧은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였고 그는 도전정신의 화신이었다. 1985년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뒤에도 좌절하지 않고 픽사를 사들여 ‘토이스토리’ 같은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성공했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한 뒤 14년 동안 매년 연봉 1달러씩만을 받으며 기업의 부활을 이끌었다. 2007년 아이폰을 내놓았을 때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스마트폰 시대를 활짝 열리는 계기가 됐다.

잡스는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인드와 긍정주의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비전과 열정을 공유한 오픈 리더였다. 그와 같은 오픈 리더가 앞으로도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