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보수의 참 모습

진영 국회의원 ychin21@na.go.kr
젊은 세대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우리 세대는 세월의 강을 한참 건너버린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도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박태준이 작곡한 불멸의 동요 '오빠생각' 그리고 가곡 '동무생각'은 나라를 잃은 서러움과 함께 아직도 마음 한곳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우리 세대가 사랑했던 노래들을 벌써 떠나버렸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합창할 노래를 찾기 힘든 시대가 됐다. 문득 전통의 소멸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전통의 극복에서 내일의 발전이 이룩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문해 본다. 지켜야 할 전통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 됐습니까?"라는 질문에는 표정이 굳어진다. '보수'라는 말 때문이다. 나는 '보수'라는 말을 싫어했다. 나 자신을 좌 · 우라는 이념의 좌표 위에 놓아본 적은 없었다. 이념보다 이성을 중시했고,이데올로기를 넘어 화해를 추구하려 했다. 대결보다 타협을 이루고 싶었다. 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비로소 내 삶의 궤적이 보수주의에 가까이 갔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부분이 있다. 우주만물의 원리와 인간의 심성을 설명한 주리론과 주기론의 대립,피로 물든 사색당쟁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몰랐다. 당장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휼해야 하고,외세의 침입을 막아야 했다.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논리보다 현실 문제의 해결이 급선무였다.

그런데도 이상주의는 미래지향적이고,사회와 세상을 이끄는 힘이라고 강요됐다. 과연 그런 것일까? 실천이 전제되지 않는 미래란 사상누각일 뿐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버리고 싶은 과거라도 그것이 오늘의 바탕이고 내일로 들어가는 문이다. 버려야 할 것은 어제와 오늘을 무시한 채 무조건 미래를 강조하는 그 관념론의 허구다.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 '보수'라는 단어에 마음을 쏟게 했다. 인문학 사전과 정치사상에 관한 책을 힘겹게 읽어 보았다. '보수주의'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내 나름의 생각으로 세 가지 정도는 말해 볼 수 있다.

첫째,보수주의는 지켜야 할 가치를 보듬는 사회의 주류여야 한다. 둘째,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셋째,명예를 지키기 위한 생활 속의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무를 회피하고서는 보수를 주장할 수 없다. 세금도 성실하게 납부하고,법과 질서를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보수주의자는 보수주의를 파괴하는 존재일 뿐이다. 부패한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깨끗해야만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함께 부를 노래를 준비할 수 있다. 그 길만이 전통의 아름다움을 계승할 수 있고 실천이 전제된 보수의 참 모습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