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손맛'의 달인 잡스, 벌써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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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 - 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매킨토시 마우스ㆍ아이팟 휠·아이폰 터치…
직관적인 조작법으로 상상력 끌어내…기술로 사유하는 시대 먼저 만나본 셈
기자가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물건을 갖게 된 때는 1989년이었다. 흔히 '286'이라 불렀던 인텔의 80286 프로세서가 장착된 모델로 640킬로바이트(KB)의 램이 들어 있었다. 흑백 그래픽 카드인 '허큘리스(Hercules) 카드'가 내장돼 있었다. 저장장치로는 하드디스크 없이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 2개가 장착돼 있었다.
◆매킨토시,충격적인 만남갓 초등학교(정확히는 국민학교)에 입학한 기자가 컴퓨터를 조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컴퓨터로 했던 일의 9할 이상은 게임이었지만 그조차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위쪽 디스크드라이브에 운영체제 MS-DOS가 들어 있는 디스켓을 넣고 컴퓨터를 켠 뒤 게임이 들어 있는 아래쪽 디스켓을 실행하는 일이 고작이었지만 이를 위해선 마법 주문과도 같은 도스 명령어들을 외울 수밖에 없었다. 폴더(당시엔 디렉터리라고 불렀다)에서 다른 폴더로 이동하려면 cd,새 폴더를 만들려면 md,복사하려면 copy,폴더에 있는 파일을 보려면 dir 등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 실행해야만 했다. 이것을 할 수 없다면 컴퓨터는 그저 불가사의한 검은 박스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첫 컴퓨터를 갖고 그 이듬해에 '아는 동네 형'의 집에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컴퓨터를 보게 됐다.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총천연색 모니터가 일체화된 모습이었다. 가장 획기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간단한 조작 방법이었다.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하는 대신 마우스를 움직여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아이콘을 누르는 것만으로 게임이 실행됐다. 검은 화면에 반짝거리는 회색 커서를 보고 키보드를 누르던 일에 익숙하던 기자에게 새로운 컴퓨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컴퓨터가 바로 애플이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던 컴퓨터,매킨토시였다. 이때 봤던 사과 마크는 오랫동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손맛'을 알았던 잡스기자가 첫 컴퓨터를 가졌던 때로부터 10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애플 컴퓨터의 창립자이자 개인용 컴퓨터 'APPLE' 시리즈로 승승장구하던 스티브 잡스는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제록스 팔로알토리서치센터(PARC)를 찾았다. 이 연구소는 레이저 프린팅 기술,근거리네트워크 표준 기술인 이더넷,유비쿼터스 컴퓨팅,최초의 태블릿PC 파크패드 등을 만든 '혁신의 산실'이다.
잡스가 이곳에서 본 것은 개인용 컴퓨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알토'였다.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를 최초로 채택한 이 컴퓨터를 보고 잡스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 결과가 바로 1984년 1월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제작한 광고에서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란 말과 함께 나오는 매킨토시 컴퓨터다.
잡스는 이때부터 직관적이고 간단한 조작법을 기기 제작의 최우선 요소로 삼았다. 2001년 출시된 아이팟에는 둥근 휠을 제외하고 모든 버튼을 없앴다. 2007년 아이폰을 통해 풀터치 스크린을 스마트폰계의 표준으로 만들었다. 공통적으로 동시대 다른 제품보다 '손맛'을 중시한 것들이다. ◆기술적 상상력의 개가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점점 더 추상적으로 변화해왔다"고 말한다. 선사시대 인간들이 조각과 그림을 남겼다면 문자 문화의 인간은 조각과 그림을 언어로 풀어냈다. 디지털 시대에는 언어보다 추상화된 픽셀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조각(3차원)과 그림(2차원)에서 문자(1차원)를 지나 픽셀(0차원)로 추상화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 플루서의 설명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문자 시대보다 구체적이다. 픽셀은 문자는 물론 이미지로 만들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시인들이 그림과 조각으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주술적 상상력'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현대인들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적 상상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잡스가 만든 물건들은 직관적인 조작법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것들이었다. 잡스가 있었기에 기술로 마음껏 사유할 수 있는 시대가 조금은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시대를 앞서 나갔던 천재 덕에 미래를 몇 년 앞서 만나본 셈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