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낡은 샤넬 백 멘 파리지엔느

민지혜 생활경제부 기자 spop@hankyung.com
"15년 전에 장만한 거예요. 패션쇼나 파티에 참석할 때 메려고 산 겁니다. " 지난주 파리에서 폐막된 '파리 프레타포르테'를 구경하러 온 40대 초반의 프랑스 여성은 낡은 샤넬 핸드백을 멘 채 이렇게 말했다. 이자벨마랑 재킷 안에 H&M 블라우스와 자라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가죽 핸드백이라 손때가 묻을수록 더 멋이 난다"며 미소지었다.

파리컬렉션에서 만난 유럽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랬다. 오래 입어야 하는 재킷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좋은 브랜드를 장만하고,유행을 타는 티셔츠 등 이너웨어는 자라나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를 많이 입었다. 에르메스 샤넬 등과 같은 고가 브랜드의 옷을 입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만 '특별한 이벤트'에 대비해 명품 브랜드의 핸드백을 1~2개 정도 갖고 있다고 했다. 쇼핑 중심지인 샹젤리제 거리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관광객으로 넘치는 고가 브랜드 매장은 중국인과 히잡 부르카 등을 착용한 아랍인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은 수백만원짜리 명품 핸드백과 옷을 사서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에 쓸어담고 있었다. 프랑스 명품그룹 PPL이 운영하는 보테가베네타 매장에선 40대 중국인 여성이 가방 20여개,지갑 10여개와 옷 10벌가량을 한꺼번에 쌓아놓고 구입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국내에서 인기 있는 샤넬 매장엔 한국인이 많았다. 한국보다 100만~150만원가량 값이 싼 까닭에 1인당 1개는 기본이고,선물용까지 2~3개를 사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세관에) 걸리지 않으려면 1개는 네 캐리어에 넣어야겠다"는 대화도 들렸다. 현지에서 9년째 살고 있는 한 국내 패션업체 직원은 "한국에서 샤넬 핸드백 가격이 비싸지자 프랑스에서도 가격 차를 줄이기 위해 예전보다 값을 더 자주 올리고 있다"고 했다.

현지에서 만난 명품업체 대표들은 "아시아권 명품 매출 증가율은 세계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국내 명품 시장규모는 5조여원.인천공항에서 세관에 적발된 미신고 관세적용품 건수도 2만7000건(올 1~8월)이 넘었다.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시대이긴 하다. 그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럭셔리 브랜드로 치장하는 게 '패셔너블'한 것으로 인식되는 한국과,파리 패션쇼에서 만난 파리지엔느의 낡은 샤넬 핸드백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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