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重 떼법'…경영위기 와도 한국선 정리해고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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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重 '포퓰리즘 미봉책' - 정치권 '재고용 권고' 무엇이 문제인가한진중공업이 1년 안에 정리해고 근로자를 재고용하라는 국회 권고안을 수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당장 부산 영도조선소를 정상 가동할 수 있는 일감 확보가 쉽지 않은데 정리해고 근로자들을 재취업시키면 한진중공업 경영부실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장 떠날땐 외면하다 뒤늦게 여론재판"
해외도피 인상 준 'CEO 리스크'도 한몫
한진중공업이 2007년에 필리핀 수비크만으로 조선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국내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데 관심이 없던 정치권이 경영난과 이에 따른 자구책으로 선택한 정리해고를 뒤늦게 문제 삼으며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텅빈 도크 외면한 권고안
한진중공업 사태의 발단은 사측이 경영 위기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생산직 400여명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으면서다.
영도조선소의 '태생적 한계'로 어려움을 겪던 이 회사는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세계 조선 불황까지 겹치면서 그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주가 전무했다. 영도조선소 부지는 26만4462㎡ 정도로 830만㎡의 부지를 갖고 있는 현대중공업 등과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도크 길이는 300m에 불과해 최대 8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규모 컨테이너선밖에 지을 수 없다. 2007년 필리핀 수비크에 조선소를 건설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정치권에서 사측을 몰아 세우는 공격 포인트는 영도조선소의 향방이다. 결국 영도조선소 문을 닫고 수비크조선소로 조선사업 전체를 이전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회사 측은 영도조선소 포기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영도조선소에 일감이 없는 가운데 정치권의 밀어붙이기식 결정으로 경영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경총 관계자는 "일부 정치권은 노동위원회와 사법부가 정당성을 인정한 '긴박한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를 부당한 해고로 취급해 이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며 "그 결과 한진중공업은 부득이하게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여론재판'으로 확산
정리해고 사태는 노조가 지난 6월27일 총파업 전격 철회와 업무복귀를 선언하면서 해결 기미를 찾는 듯했다. 그러나 정리해고자들의 잇단 항의집회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고공농성 '희망버스' 행사 등으로 노사 합의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김여진 씨 등 연예인들까지 합세,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기업 노사 간의 논의와 합의가 우선돼야 할 문제가 여론재판으로 확산됐다. 정치권은 이에 편승해 앞다퉈 사태를 정치 쟁점화하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한진중공업 문제가 정치 ·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게 된 데에는 조남호 회장의 책임도 크다. 지난 6월 희망버스가 등장한 이후 조 회장은 돌연 출국길에 올랐다. 그의 출국 날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정리 해고 장기 파업 사태에 대한 질의를 위해 출석을 요청한 날로, 이 때문에 '국회 출석을 피하기 위한 기획 출국이 아니냐'는 비난이 나왔다. 국내 노동자들을 정리 해고한 직후 174억원을 주주 배당하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행방이 묘연했던 조 회장이 지난 8월10일 귀국해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해외체류 등에 대한 석연치 않은 해명으로 신뢰를 얻지 못했다.
게다가 상당한 기간 동안 출장중이 아닌 국내에 체류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처음부터 갈등을 외면하려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의 개입으로 법과 원칙이 훼손되는 나쁜 선례"라면서도 "기업들도 투명한 인사관리를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너 경영인들이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도 해외에 도피하는 등 죄인처럼 행동한 것이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국회 권고안은 1998년 2월 노 · 사 · 정 합의에 따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한 노동법을 사문화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