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음악이 제 손가락 치유했죠"

'건반 위의 시인' 페라이어
29일 예술의전당서 공연
"열다섯 살 무렵 뉴욕 카네기홀에서 카잘스가 지휘하는 다섯 시간 동안의 공연을 보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말보로에서 그를 다시 만나 루돌프 세르킨 등과 함께 연주하고 영감을 주고받았죠.카잘스가 푸에르토리코로 자주 초대해줘서 실내악 연주도 여러번 한 기억이 납니다. 손가락 부상을 이겨낸 힘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 것 같네요. "

고난을 딛고 일어선 '피아노의 시인' 머리 페라이어(64 · 사진)는 오는 29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고통스러웠던 시간보다 즐거웠던 시간을 더 많이 기억한다"고 말했다. 1972년 리즈콩쿠르에서 북미 출신 최초로 1등을 거머쥐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그는 1973년 영국 최대 클래식 음악축제인 알데버그 페스티벌 연주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1981년부터는 9년간 이 축제의 설립자인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성악가 피터 페어스 등과 공동 예술감독 겸 피아니스트로 활약했다.

한창때인 1990년 악보에 엄지손가락을 베인 뒤 부상이 심각해져 여러 차례 수술을 받느라 피아노 곁을 떠났다가 1990년대 말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2000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내놓고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연속 15주간 머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바흐 음악의 종교적인 감동과 그 깊이를 좋아합니다. 그의 선율은 영혼을 건드리죠."부상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바흐 음악의 힘을 받았다는 그는 "회복 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위해 스위스로 떠나는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누군가 전화해 '피아노를 옮기다 계단에서 떨어뜨렸다'는 소식을 전했다"며 "나쁜 일 뒤에 항상 좋은 일이 오는 것 같다. 피아노는 부서졌지만 녹음 당시 스태프와 주변 환경 모두 완벽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SMF)의 수석 객원지휘자,예루살렘 뮤직센터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면 큰 기계의 일부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실내악은 연주자들과 긴밀히 소통할 수 있어서 ASMF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며 "1년에 네 차례 만나는 예루살렘 뮤직센터의 젊은 음악가들을 가르치고 세계 무대에 소개하는 일도 의미 깊다"고 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 G장조',베토벤의 '소나타 27번 E단조',브람스의 '4개의 소곡'과 슈만의 '어린이 정경',쇼팽의 프렐류드,마주르카,스케르초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02)318-4301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