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현금성 자산 4조 급감…내년 투자 '속도조절'

원료값 올랐지만 반영 못해 영업이익 '뚝'

환율 10원 상승할 때마다 영업이익 1000억원 줄어
대한항공, KAI 인수 중단…박용만 "내년 사업계획 고심"
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 포스코가 올초 계획한 투자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부족한 탓이다. 영업이익이 줄어든 데다 여유자금마저 모자라서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원료값 · 환율 상승…영업이익 감소지난해까지 7조원대에 이르던 포스코의 현금성 자산은 올 들어 3조원 수준으로 줄었다. 포항과 광양제철소 운영에 소요되는 두세 달치 매출 원가로,내부적 기준에 따른 적정 보유량을 유지하고 있다. 영업이익 규모도 급감하고 있는 추세다. 통상 6조원 안팎을 유지해온 포스코의 연간 영업이익은 올해 4조5000억원대로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철광석과 유연탄값은 2년 전과 비교해 3배가량 올랐지만 원료값 인상분을 제품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다. 환율 급등도 한몫했다. 환율이 10원 상승할 때마다 원료값 상승으로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1000억원 가까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들어갈 돈은 뻔히 정해져 있다. 올해 초 소규모 M&A(인수 · 합병)와 해외 광산 인수,국내외 설비투자액 등만 총 7조3000억원을 책정해 놨다. 올해 벌어들인 영업이익과 여유 돈 만으로는 계획해놓은 투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내년 상황도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의 '2012년 경제 산업 전망 및 이슈'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철강산업은 글로벌 경기 불안과 함께 국내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이 이어지면서 내수와 수출,생산 등 모든 부문에서 증가율이 큰 폭으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 사업계획 수립 '난감'

다른 대기업들도 투자 규모를 조정하거나 시기를 미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공장 신 · 증설 프로젝트를 연기하고 대형 M&A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벌여온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 검토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요즘 같은 상황에선 현재 주가에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주고 KAI를 인수하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STX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포기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현대중공업 역시 인도 중전기기 생산공장 착공 시기를 연기했다. 내년 연간 투자규모를 늘리지 않거나 축소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5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내년 설비투자를 계획 중인 기업은 26.8%로 올해(42.8%)보다 크게 감소,보수적인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용만 ㈜두산 회장은 "유럽과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와 함께 내년에는 국내외에서 여러 종류의 선거가 이어지는 등 경영 외적인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기업 입장에선 사업계획을 짜기 가장 힘든 해가 될 것"이라며 "사업계획 전반에서 보수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우리를 비롯해 LCD업계가 워낙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내년 투자 규모는 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