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EO '시련의 가을'…지난달 108명 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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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야후 등 IT거물 '줄낙마'"경기가 악화되자 기업들이 새로운 피를 수혈받길 원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실적 부진 월가도 장수 교체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라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고용컨설팅 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는 13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달에만 108명의 CEO가 옷을 벗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111명의 CEO가 교체된 이후 최고 수준이다. 조사업체 크리스트콜더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 7월까지 미국 669개 기업 중 CEO를 교체한 회사는 전체의 13%에 달한다. 16%를 기록했던 2005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IT 금융 CEO 줄줄이 낙마
CEO가 대거 교체된 업종은 정보기술(IT) 부문과 금융권이다. 휴렛팩커드(HP)는 지난달 레오 아포테커 CEO를 해고했다. CEO 자리에 오른 지 11개월 만이다. 아포테커는 재임 기간 실적 전망을 세 차례나 하향 조정하며 시장과 주주들의 신뢰를 잃었다.
캐럴 바츠 야후 CEO도 지난달 이사회의 전화 한 통에 해고됐다. 실적 부진과 이사회와의 갈등이 해고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구글을 본궤도에 안착시킨 에릭 슈미트도 창업자 래리 페이지에게 CEO 자리를 넘겨줬다.
월가에서도 CEO 경질이 이어지고 있다. 존 맥 모건스탠리 CEO는 최근 올해 말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부도설에 시달리는 등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것이다. 이에 앞서 로버트 켈리 뉴욕멜론은행 CEO도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사임했다. 챌린저는 CEO 교체 열풍에 대해 "IT와 금융업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표적인 사업"이라며 "이 분야에 종사하는 CEO들에게 능력을 입증할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각 기업 이사회가 혁신 전문가를 찾아나선 것도 CEO 교체가 늘어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는 CEO로 가는 관문이 되고 있다. 애플의 신임 CEO가 된 팀 쿡의 직책은 COO였다. 코스트코의 크레이그 젤리넥 COO, 3M의 잉게 슐린 COO도 CEO직을 승계할 예정이다. 크리스트콜더에 따르면 669개 미국 기업 중 50% 이상이 COO를 CEO로 승진시킬 계획이다.
◆퇴장하는 '성공 신화'대형마트 아르바이트생 출신인 코스트코의 창업자 시네갈은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74세인 그는 창업 이전부터 함께했던 젤리넥에게 CEO 자리를 승계하기로 했다.
반도체 제조업체 AMD는 올초 더크 메이어 CEO를 경질했다. 메이어 전 CEO는 반도체 산업 분야 터줏대감인 인텔에 필적할 정도로 회사를 키웠지만 최근 실적부진이 이어지면서 낙마를 피하지 못했다. 이사회는 최근 레노버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로리 리드를 신임 CEO로 영입하며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