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WC since 1868] 하늘·바다·높은 산 어디서나…손목 위 ‘6개 빛깔’

파일럿 라인, 조종사 위한 ‘하늘의 시계’

1930년대까지 비행 조종사들은 회중시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계를 손목 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작게 만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1936년 IWC가 최초의 파일럿 시계인 ‘스페셜 파일럿 워치’를 개발하기 전까진 말이다.이 시계는 실제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을 위해 만들었다. 조종사들이 비행할 때 필요한 기능과 자기장의 영향력에 대해 심층적으로 연구한 뒤 이를 손목시계로 구현해낸 것이다. 최초의 파일럿 시계는 견고한 글래스 안에 잘 보이는 화살촉 모양의 인덱스(눈금 및 숫자), 돌아가는 베젤(테두리), 자기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탈진기(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톱니바퀴를 회전시키는 장치), 발광성 핸즈(시계바늘) 등으로 이뤄졌다. ‘마크 나인’이란 이름이 붙은 이 시계는 IWC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40년대 들어선 ‘빅 파일럿 워치’를 내놓았다. 직경 55㎜,무게 183g으로 IWC 모델 가운데 가장 큰 손목시계였다. 빅 파일럿 워치는 이후 IWC의 파일럿 시계를 대표하는 모델로 꾸준히 사랑을 받았다. 이 가운데 퍼페추얼 캘린더(한 달이 28,30,31일인 경우와 윤년까지 인식해 날짜를 표시하는 기능)가 장착된 모델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격은 1800만원대. ‘파일럿 워치 크로노그래프’ ‘스핏 파이어’ 등 파일럿 라인의 가격은 500만원대부터 6000만원대까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포르투기즈 라인, 마도로스 위한 ‘항해의 시계’포르투기즈는 IWC의 ‘얼굴’과 같은 라인이다. 최초의 항해 전문 손목시계이자 IWC의 고급 시계를 대표하는 라인이기도 하다.

포르투기즈가 탄생한 시점은 1939년. 포르투갈의 해상 상인 로드리게스와 텍세이라가 “항해용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IWC에 주문한 게 새로운 역사를 알리는 출발점이 됐다. 이들 상인은 항해할 때 필요한 마린 크로노미터(항해 정밀 시계)의 정확성을 담은 시계를 손목 위에 찰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에는 크기가 큰 회중시계로 만들어야만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다. 연구를 거듭한 IWC는 얇고 작은 무브먼트를 제작, 지름 43㎜ 크기의 손목시계로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1981년까지 오리지널 포르투기즈는 오직 699개만 주문 제작됐다. 칼리버74 무브먼트(동력장치)를 사용한 모델로 304개를 만들었고, 칼리버98 및 982를 장착한 모델로 365개를 생산했다. IWC는 첫 포르투기즈 시계를 만든 이듬해부터 이 라인을 정규제품군에 포함시켰다.IWC의 6개 라인 중 고난도 부가기능이 장착된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1000만원 안팎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에서부터 10억원짜리까지 다양한 모델이 있다. 최근 선보인 천체시계는 10억원에 달한다. ‘포르투기즈 퍼페추얼 캘린더’는 영구달력이 탑재돼 있어 2499년까지 날짜를 조정할 필요가 없다. 가격은 4600만원대.

인제니어 라인, 탐험가 위한 ‘極地의 시계’

파일럿 라인이 하늘에서 영감을 받은 시계라면 인제니어 라인은 땅에 뿌리를 둔 시계다. 거대한 산, 극지방 등 땅 위에서 만날 수 있는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낸다는 생각으로 만든 시계란 얘기다. 인제니어 라인이 한눈에 보기에도 강하고 남성적인 외관을 갖게 된 이유다.1950년대에 나온 인제니어 라인은 전기, 기계, 자동차 등 기술력이 각광받던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해 이를 시계로 표현해냈다. 당대 최고의 무브먼트 중 하나로 꼽히는 칼리버852와 칼리버8521이 바로 이때 나왔다. 자기장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는 시계, 가장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매진한 끝에 이들 무브먼트가 장착된 인제니어 모델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유명한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태엽 감는 장치)도 이 무렵 나왔다. 당시 IWC의 기술 디렉터를 맡고 있던 펠라톤이 개발한 이 시스템 덕분에 IWC는 1950년대 초 첫 양방향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인제니어 라인은 거친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나 높은 산에 오르는 전문 산악인, 철인5종 경기 선수, 탐험가 등 극한 모험을 즐기는 ‘강인한 남성’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거친 운동에 대비해 강력한 통합 충격 흡수 시스템을 탑재한 ‘빅 인제니어 오토매틱’이 대표 모델이다. 가격은 1600만원대.

아쿠아 타이머 라인, 다이버 위한 '심해의 시계'

이번에는 바다다. 파일럿 라인이 하늘, 인제니어 라인이 땅에서 출발했다면 아쿠아 타이머 라인은 다이버를 위해 만든 시계다. 탄생 시점은 1967년. 심해의 극한 압력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최초의 전문 다이버용 시계였다.

깊은 바다에서는 산호와 해파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사방이 어두운 데다 극심한 압력 탓에 오랜 시간에 바다에 머무를 수 없는 만큼 시계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단 1~2초 만에 사람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없이 섣불리 심해로 뛰어드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IWC의 아쿠아 타이머는 이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줬다. 수심 200m의 압력(20bar)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덕분에 심해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했다. 아쿠아 타이머는 이후 진화를 거듭, 수심 2000m의 압력까지 견뎌낼 수 있게 됐다. 물속에서 보내는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도록 정밀한 크로노그래프 기능도 추가했다.

아쿠아 타이머의 주요 타깃은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 남성들이다. 요트 등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남성들도 아쿠아 타이머의 고객 리스트에 올라 있다. 물론 심해를 탐험하는 전문 다이버들도 많이 찾는다. 베스트셀러인 ‘아쿠아 타이머 크로노그래프’의 가격은 900만원대다.

다빈치 라인, 천재를 기린 ‘혁신의 시계’

역사상 최고 수준의 천재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계 분야에서도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다빈치는 시간을 철학적인 개념으로만 접근했던 기존 사상가들과 달리 시간을 어떤 식으로 나눠야 할지, 그렇게 나눈 시간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도구적인 개념으로 풀어보려고 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노트에는 이런 고민을 다룬 글과 스케치가 남아 있다. 시계업계에서 다빈치를 ‘무브먼트 연구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IWC는 다빈치가 남긴 시간측정 도구에 대한 스케치에서 영감을 얻어 1969년 다빈치 라인을 선보였다. 다빈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혁신적인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IWC에서 ‘전설의 기술자’로 불리는 컬트 클라우스가 1985년 개발한 ‘다빈치 퍼페추얼 캘린더’가 대표적인 예다. 이 시계는 세계 최초로 4자리의 연도를 표시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일반 시계는 예컨대 2월28일에서 3월1일로 넘어갈 때 태엽을 세 차례 감아 29일,30일,31일을 넘겨 1일로 맞춰야 하는데, 이 시계는 2499년까지 시계가 알아서 날짜를 맞춰준다. 달이 차고 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페이즈 디스플레이’의 오차도 577년 동안 하루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다.

다빈치 라인은 높은 기술력과 아름다운 디자인 덕분에 시계 수집가들이 좋아하는 라인이다. ‘다빈치 퍼페추얼 캘린더 디지털 데이트 먼쓰(플래티넘)’는 디지털 방식으로 달력을 표기하는 독특한 제품이다.가격은 8500만원대.

포르토피노 라인, 간결한 ‘심플 라이프 시계’

포르토피노는 ‘클래식한 멋과 절제된 우아함’을 보여주는 IWC의 대표 라인 가운데 하나다. 1984년 탄생한 이 제품은 회중시계가 주를 이뤘던 당시의 시계문화를 손목시계로 돌리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큼지막한 케이스(지름 46㎜) 덕분에 ‘회중시계와 손목시계를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란 얘기를 들었다.

오리지날 포르토피노의 매력 포인트는 지중해식 라이프 스타일을 재현한 듯한 편안함과 간결함에 있었다. 1988년 나온 후속 모델(Ref.3731)은 3.8㎜에 불과한 얇은 두께가 인상적인 모델이었다. 233개 부품이 들어간 쿼츠 무브먼트(건전지로 동력을 얻는 동력장치)를 탑재했는데도 이렇게 얇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업계는 놀라움을 표시했었다. 1995년에는 퍼페추얼 캘린더와 문페이즈 기능을 장착한 3.15㎜ 두께의 모델(Ref.2050)을 선보여 다시 한번 시계업계에 IWC의 이름을 드높였다.

올해는 한번 태엽을 감으면 192시간(8일가량) 동안 작동하는 ‘포르토피노 핸드 와인드 8데이즈’를 주력 모델(2400만원대)로 내놓았다. 이탈리아 최고급 가죽제작 업체인 산토니에서 만든 가죽 스트랩을 달아 클래식한 느낌을 더했다. 포르토피노 라인은 IWC 컬렉션 중 가장 클래식하며 군더더기 없는 라인으로, 편안함과 클래식함을 추구하는 남성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가격대는 500만~2400만원대.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