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망칠라"…1주일 만에 원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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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동 사저 전면 재검토 배경지난 16일 밤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오후 8시를 넘겨 청와대로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은 여장을 풀기도 전에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김효재 정무수석,최금락 홍보수석 등 핵심 참모들을 소집했다. 미국 출장 기간 중 국내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기 위해서였지만 핵심 주제는 '내곡동 사저'였다.
MB 귀국 후 심야 참모회의서 최종 결심
야당 공세에 백기 든 셈…레임덕 가속화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데 대한 대응책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참모들은 사태 진화를 위해 '전면 재검토'를 조심스럽게 건의했고,이 대통령은 건의를 전격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지난 9일 한 주간지의 보도로 불거진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논란은 1주일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퇴임 후 사저 문제가 의혹의 대상이 되고 결국 백지화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 장악력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왜 백지화했나
이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백지화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10 · 26 서울시장 보궐선거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사저 논란이 여당 후보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점을 고려했다. 특히 청와대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정치 공세를 펴자 서둘러 결정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으로 나경원 후보가 초반 열세를 만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표를 깎아먹고 있다는 여당의 곱지 않은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통령 사저 논란이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부담이다. 이달 안에 한 · 미 FTA 협정안의 국회 비준을 목표로 삼고 있는 청와대로선 정치권의 초당적 협조가 필요한 때다. 그런 마당에 대통령 사저를 놓고 정치권이 논란을 벌이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레임덕 가속페달 밟아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백지화 지시로 논란이 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신축 계획이 야당의 의혹 제기로 무산된 것은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상처를 남겼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법적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사저 부지 매입을 철회한 것은 야당 공세에 백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여서다. 게다가 최근 이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김두우 전 홍보수석이 부산저축은행 수뢰 혐의로 구속 기소되고,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때문에 여당인 한나라당이 청와대에 등을 돌리는 상황이 예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정권 재창출이 걸린 선거 정국에서 청와대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 더 이상 여당도 청와대 편을 들 수 없다"며 "국정 운영의 무게중심이 청와대에서 당으로 급속히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통령 임기가 1년4개월이나 남았지만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