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사정 '이상 징후'…'AAA급'도 회사채 발행 서둘러

83개 상장사 현금흐름 2개월 새 42% 급감 전망…4곳 중 1곳은 '순유출'
국내 주요 기업 현금 흐름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다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올 영업을 통해 들어온 돈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투자 계획을 조정한다 하더라도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빡빡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늘리면서 장기 불황에 대비하고 있다. 신용등급 'AAA'급 기업들까지 채권 시장에 등장하면서 이달 중 수천억원 단위의 회사채 발행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하지만 채권시장도 양극화돼 신용등급이 BBB 이하인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 현금 흐름 악화

17일 증권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요 83개 상장사들의 올해 영업과 투자를 통한 현금흐름(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 전망치는 지난 14일 기준 42조990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3곳 이상 증권사들의 전망치를 평균한 값이다. 그리스 디폴트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지난 7월 말 증권사들의 이들 기업 올 현금흐름 전망치(74조4989억원)와 비교하면 31조5087억원(42.29%) 급감했다.

기업들의 현금흐름(순유입액)은 영업활동과 투자활동,재무활동 등을 통해 들어온 현금과 나간 현금을 가감해 계산한다. 주로 차입(재무활동)을 통해 현금이 들어오는 현금흐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기업의 잉여현금으로 볼 수 있다. 2개월 사이에 기업들의 영업과 투자를 통한 현금흐름 전망치가 줄어든 것은 기업들의 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된 탓이다. 이들 83개 상장사의 순이익 전망치는 지난 7월 75조7746억원에서 지난 14일 68조6786억원으로 7조960억원(9.36%) 감소했다.

이형관 NICE신용평가정보 선임연구원은 "원 · 달러 환율 상승으로 원화 기준 원재료비가 늘어나는 점도 현금흐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7월 말 대비 영업과 투자 현금흐름이 순유입에서 순유출로 바뀐 기업들도 주로 이런 기업이다. 올해 4100억원 적자가 우려된 LG디스플레이는 현금흐름도 440억원 순유입에서 1472억원 순유출로 바뀌었다. LG디스플레이를 포함해 CJ제일제당 CJ C&M 현대상선 삼성물산 한국가스공사 서울반도체 한화 등 12개사의 현금흐름이 순유출로 전환됐다. ◆기업 자금 조달 확충 경쟁

기업들이 영업과 투자활동을 통해 현금흐름이 나빠지면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등 차입금을 통해 현금을 끌어와야 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3분기 회사채 발행액은 30조9252억원으로 전년 동기(26조1777억원)보다 4조7475억원(18.1%) 증가했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14일까지 2조1900억원의 회사채가 발행됐다. 이번주에는 2조2942억원이 발행을 앞두고 있다. 삼성물산 4000억원을 비롯해 두산건설(1000억원) SK(1500억원) 등이 회사채를 통해 수천억원대 자금 조달에 나설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내달 2일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AAA'급 기업들도 회사채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KT는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한전 자회사인 동서발전 남동발전 등도 회사채 발행을 위한 입찰을 받았다. ◆회사채 시장 양극화 심화

기업들이 현금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들은 돈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들이 이달 들어 오는 21일까지 발행했거나 발행할 예정인 회사채는 3조6220억원이다.

이 중 신용등급이 BBB급인 회사채는 1900억원으로 전체의 5.2%에 불과하다. 반면 AA급은 2조2220억원에 달해 전체의 61.3%를 차지한다. A급도 1조1400억원(31.4%)에 이르고 있다. BBB급 회사채 발행액은 지난 4월에는 6450억원에 달하기도 했지만 7월 2550억원,8월 2100억원,9월 700억원 등으로 감소해 왔다. 이수정 SK증권 연구원은 "BBB급 기업들은 우량그룹의 계열사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사실상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금융불안이 진정될 때까지 이런 현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정환/이상열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