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의 법조 산책] 친절한 판사와 사법 신뢰 회복

김병일 법조팀장 kbi@hankyung.com
친절한 판사는 어떤 판사일까. 피고인 입장에선 반말 안 하고 형을 깎아주려 애쓰는 판사가 친절하게 느껴질 테고,변호사에겐 엉뚱하게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핵심을 잘 짚어주는 판사가 고마울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매수 사건을 재판 중인 김형두 부장판사는 그런 점에서 친절한 판사로 꼽을 수 있겠다. 선거비 보전 사전약속이 없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곽노현 피고인 측에 김 부장판사는 국내외 4종류의 법학 교과서를 복사해와 "핵심 쟁점은 2억원의 대가성"이라고 맥을 짚어줘 주목을 받았다. 신임 양승태 대법원장이 사법신뢰를 회복하겠다며 '1심재판 강화'를 화두로 들고 나왔다. 운동시합에서 삼세판하듯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을 순례하는 관행은 중단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1심에서 끝장재판을 유도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이 양 대법원장의 이런 의도를 따라줄지 의문이다. 1심에 불복해 2심으로 가면 대체로 형이 깎이거나 벌금이 내려간다. 2심용으로 선임된 변호사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2심 재판부가 배려해준다는 게 일반의 생각이다. 그러니 누가 2심으로 가지 않겠는가. 3심은 법률심이다. 사실관계는 더 이상 다루지 않고 2심이 법률적으로 잘못 판단했는지 여부만 따지도록 돼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증거를 기초로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채증법칙을 위배했다느니 경험칙위반이니 하며 온갖 명분을 들이대며 법률심의 대상인 것처럼 꾸미는데도 대법원이 넙죽넙죽 받아주고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겨주기 아니냐는 의혹이 무성한 대목이다. 연간 3만건이 넘는 살인적인 상고심 건수는 사법부가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까지 헤아려주는 친절한 재판부 어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