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사망…‘포스트 카다피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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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마르 카다피(69)가 20일(현지시간) 고향 시르테에서 사망해 리비아에서 본격적인 ‘포스트 카다피 시대’가 열리게 됐다.
카다피는 이날 최후 거점 시르테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과도정부군에 밀려 42년 간의 철권통치를 마무리했다. 8개월여에 걸친 내전도 사실상 종식됐다.이에 따라 국가과도위원회(NTC)는 ‘리비아 해방’을 공식 선언하고 새 정부 구성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하지만 NTC가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분열상을 보여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처참한 카다피의 최후 사진이 리비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과도정부 “카다피 생포후 사망” = NTC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이날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NTC 제2인자인 지브릴 총리는 오후 4시 20분께 수도 트리폴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NTC 대변인 압델 하페즈 고가는 “카다피가 혁명군에 체포된 후 사망했다” 면서 “이는 역사적 순간이요, 폭정과 독재의 종말”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23일 반군의 수도 트리폴리 함락을 계기로 종적을 감춘 카다피는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향 시르테 등을 거점으로 강력하게 저항해 왔다.◇처참했던 카다피 최후의 순간 = 카다피는 자신의 고향이자 최후의 은신처였던시르테 인근에서 최후를 맞았다.
AFP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카다피는 이날 호송차량을 80대를 앞세워 반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프랑스의 전투기가 위협 폭격으로 멀리 가지는 못했다. 이어 시르테 서쪽으로부터 3㎞ 떨어진 곳에서 과도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카다피는 도망쳐 인근 하수관으로 숨었으나 곧바로 적발됐으며 이후 뒤 누군가에 의해 총을 맞았다. 이송되는 도중 처참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선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CNN으로 공개된 영상과 현장 목격자의 증언 등을 통해 볼 때 ‘교전 중 총격으로 인한 사망’, ‘NTC군의 구타 후 사살’, ‘카다피 경호원 총격으로 사망’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지브릴 NTC 총리는 트럭이 출발하려는 순간 교전이 벌어지면서 카다피가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밝혔으나 다른 소식통은 생포한 카다피를 누군가 구타하다 죽였다면서 “카다피가 저항했던 것 같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병사는 발각 당시 카키색 복장에 머리에는 터번을 두르고 있던 카다피가 생포 순간 “쏘지마, 쏘지마”라고 외쳤다고 전하기도 했다.
앞서 이날 과도정부 병사들 사이에서 카다피 생포 후 모습이라며 유포되고 있는 휴대전화 동영상을 AFP 통신이 캡처한 사진 속의 카다피는 얼굴과 목이 피투성이인 참혹한 상태로, 눈을 뜨고 있지만 생사는 불확실한 모습이었다.
◇카다피 장례 비공개로 이뤄질 듯 = 숨진 카다피는 머리와 복부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현재 그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검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카다피의 시신은 미스라타의 한 이슬람 사원에 안치됐으며 21일 이슬람 전통에따라 비밀리에 묻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정부 관계자는 카다피의 시신을 21일 오후 빠른 절차를 거쳐 비공개로 매장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매장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시르테 장악…사실상 내전 종식 = 과도정부군은 카다피 세력의 마지막 집결지였던 시르테를 장악하면서 8개월에 걸친 내전도 사실상 종식됐다. 2주 전부터 시르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한 과도정부군은 이날 북서지역에 있는 2구역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던 카다피 세력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했다.
과도정부군의 현지 지휘관 유누스 알 압달리는 “시르테가 해방됐고 카다피군은 없다” 며 “도주하는 카다피군을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과도정부군은 앞서 수도 트리폴리에 이어 카다피군의 거점이었던 바니 왈리드를이미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구심점을 잃은 카다피 세력이 더 이상 의미 있는 저항에 나서기 힘들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브릴 총리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의장이 늦어도 21일까지는 리비아 해방을 선언하고 카다피의 최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리비아 전역 환호 = 시르테와 반정부 시위의 거점 역할을 했던 벵가지 등에서 과도정부군과 시민들이 카다피의 사망 소식에 환호했다. 수도 트리폴리를 내준 뒤 고향인 시르테에서 2개월여 항전해온 카다피의 사망 사실이 전해지자 시민군 병사들은 허공에 기관총을 쏘아대며 진정한 해방의 순간을 맞았다며 기뻐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세리머니’가 과열되자 NTC측은 확성기를 들고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카다피 시신을 운구하는 장면으로 보이는 동영상은 현지 병사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벵가지에서도 수천명의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기쁨의 춤을 추며 허공에 총을 쏘는 등 기쁨을 만끽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
카다피는 이날 최후 거점 시르테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과도정부군에 밀려 42년 간의 철권통치를 마무리했다. 8개월여에 걸친 내전도 사실상 종식됐다.이에 따라 국가과도위원회(NTC)는 ‘리비아 해방’을 공식 선언하고 새 정부 구성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하지만 NTC가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분열상을 보여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처참한 카다피의 최후 사진이 리비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과도정부 “카다피 생포후 사망” = NTC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이날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NTC 제2인자인 지브릴 총리는 오후 4시 20분께 수도 트리폴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NTC 대변인 압델 하페즈 고가는 “카다피가 혁명군에 체포된 후 사망했다” 면서 “이는 역사적 순간이요, 폭정과 독재의 종말”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23일 반군의 수도 트리폴리 함락을 계기로 종적을 감춘 카다피는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향 시르테 등을 거점으로 강력하게 저항해 왔다.◇처참했던 카다피 최후의 순간 = 카다피는 자신의 고향이자 최후의 은신처였던시르테 인근에서 최후를 맞았다.
AFP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카다피는 이날 호송차량을 80대를 앞세워 반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프랑스의 전투기가 위협 폭격으로 멀리 가지는 못했다. 이어 시르테 서쪽으로부터 3㎞ 떨어진 곳에서 과도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카다피는 도망쳐 인근 하수관으로 숨었으나 곧바로 적발됐으며 이후 뒤 누군가에 의해 총을 맞았다. 이송되는 도중 처참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선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CNN으로 공개된 영상과 현장 목격자의 증언 등을 통해 볼 때 ‘교전 중 총격으로 인한 사망’, ‘NTC군의 구타 후 사살’, ‘카다피 경호원 총격으로 사망’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지브릴 NTC 총리는 트럭이 출발하려는 순간 교전이 벌어지면서 카다피가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밝혔으나 다른 소식통은 생포한 카다피를 누군가 구타하다 죽였다면서 “카다피가 저항했던 것 같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병사는 발각 당시 카키색 복장에 머리에는 터번을 두르고 있던 카다피가 생포 순간 “쏘지마, 쏘지마”라고 외쳤다고 전하기도 했다.
앞서 이날 과도정부 병사들 사이에서 카다피 생포 후 모습이라며 유포되고 있는 휴대전화 동영상을 AFP 통신이 캡처한 사진 속의 카다피는 얼굴과 목이 피투성이인 참혹한 상태로, 눈을 뜨고 있지만 생사는 불확실한 모습이었다.
◇카다피 장례 비공개로 이뤄질 듯 = 숨진 카다피는 머리와 복부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현재 그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검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카다피의 시신은 미스라타의 한 이슬람 사원에 안치됐으며 21일 이슬람 전통에따라 비밀리에 묻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정부 관계자는 카다피의 시신을 21일 오후 빠른 절차를 거쳐 비공개로 매장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매장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시르테 장악…사실상 내전 종식 = 과도정부군은 카다피 세력의 마지막 집결지였던 시르테를 장악하면서 8개월에 걸친 내전도 사실상 종식됐다. 2주 전부터 시르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한 과도정부군은 이날 북서지역에 있는 2구역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던 카다피 세력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했다.
과도정부군의 현지 지휘관 유누스 알 압달리는 “시르테가 해방됐고 카다피군은 없다” 며 “도주하는 카다피군을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과도정부군은 앞서 수도 트리폴리에 이어 카다피군의 거점이었던 바니 왈리드를이미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구심점을 잃은 카다피 세력이 더 이상 의미 있는 저항에 나서기 힘들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브릴 총리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의장이 늦어도 21일까지는 리비아 해방을 선언하고 카다피의 최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리비아 전역 환호 = 시르테와 반정부 시위의 거점 역할을 했던 벵가지 등에서 과도정부군과 시민들이 카다피의 사망 소식에 환호했다. 수도 트리폴리를 내준 뒤 고향인 시르테에서 2개월여 항전해온 카다피의 사망 사실이 전해지자 시민군 병사들은 허공에 기관총을 쏘아대며 진정한 해방의 순간을 맞았다며 기뻐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세리머니’가 과열되자 NTC측은 확성기를 들고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카다피 시신을 운구하는 장면으로 보이는 동영상은 현지 병사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벵가지에서도 수천명의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기쁨의 춤을 추며 허공에 총을 쏘는 등 기쁨을 만끽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