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연내 코스피 200P 끌어올릴 '초대형 호재' 는…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요즘 월가에서는 '시나리오 증시'라는 용어가 시장 참가자 사이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래가 워낙 불확실해 특정 상황을 가상해 주식을 투자하는 경우를 말한다.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지난 8월 초 이후 글로벌 증시는 미국 경제와 유럽 재정위기 요인에 전적으로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기법상 요인분석(factor analysis)을 해보면 한국 증시만 하더라도 양대 변수가 70% 정도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온다. 당사국인 미국과 유럽의 증시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현 시점에서 미국 경제 앞날을 보는 시각은 실로 다양하다. 낙관론도 회복세가 빠를 것이라는 '소프트 패치'와 경제주체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할 것이라는 '라지(large) 패치'로 나뉜다. 비관론도 저점이 두 개 형성될 것이라는 '더블 딥'에 이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한 번 더 깊은 골이 찾아올 것이라는 '트리플 딥'을 경고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경기 침체 상태에서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온 지는 오래다. 최근 들어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슬럼플레이션' 가능성까지 나온다. 증시 입장에서 재정리한다면 낙관론인 '소프트 패치'와 비관론인 '더블 딥' 시각으로 양분된다.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 경고'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는 변수가 너무 많고 복잡하다. 앞으로 유럽 재정위기 운명을 결정할 △위기 진원지인 그리스 디폴트 시기 △유럽 재정안정기금 확대 규모 △유럽 금융사 자본 확충 수단 △유럽연합(EU)의 가담 여부 △브릭스(BRICs)의 자금지원 방안 등 그 어느 하나 확정된 것이 없다. 다섯 가지 변수 가운데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 재정안정기금 확대 여부다. 영구기금이든,레버리지 형태든 간에 대규모 확대 결정이 나오면 나머지 변수들은 해결할 수 있거나 그 의미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발생한 유럽 부실채권 규모나 시장의 기대를 감안한다면 최소한 1조~2조유로 이상은 확보해야 한다.

앞으로 글로벌 증시 운명을 좌우할 미국 경기와 유럽 재정안정기금 확충 변수를 조합해 보면 네 가지 '경우의 수(combinations)'가 나온다. 즉, ①미국 경기가 '소프트 패치'하고 유럽 재정안정기금도 1조~2조유로 이상 확대되는 경우 ②미국 경기는 '소프트 패치'하지만 유럽 재정안정기금이 1조~2조유로 이상 확대되지 않는 경우 ③유럽 재정안정기금은 1조~2조유로 이상 확대되지만 미국 경기가 '더블 딥'에 빠지는 경우 ④미국 경기가 '더블 딥'에 빠지면서 유럽 재정안정기금도 확충되지 않는 경우다.

각각의 경우를 코스피지수에 모의실험(simulation)해 보면 최상의 시나리오인 ①의 경우 그 어느 국가보다 한국이 혜택을 봐 연내 코스피지수가 200포인트 이상 추가 상승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중간 시나리오인 ②나 ③으로 간다면 지금처럼 코스피지수 1800~1900을 중심선으로 변동성이 큰 '팻 테일 리스크(fat tail risk)' 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④의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최악의 경우다. 미국 경기가 '더블 딥'에 빠지고 유럽 재정안정기금이 유로존 회원국이나 주요 20개국(G20) 내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이해관계로 확충되지 못할 경우 '제2의 리먼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증시도 1500선 밑으로 폭락하면서 지난달 이후 불거졌던 각종 위기설이 재차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네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느 시나리오로 갈 것인가. 이달 말에는 미국의 3분기 성장률 속보치가 나온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2.5% 안팎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2분기 성장률 확정치가 1.3%인 점을 감안하면 '소프트 패치'(혹은 '라지 패치')로 '더블 딥'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유럽 재정안정기금 확대 방안은 뒤늦게 숨 막힌 일정을 갖고 있는 유럽의 자체적인 회의를 통해 진전되고 있지만,다음달 3일부터 프랑스 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경제 안정 차원에서 G20 내 선진국과 신흥국 간 '대타협(grand bargain)'이 이뤄진다면 브릭스의 자금 지원 방안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조 방안만 나온다면 사실상 유럽 재정안정기금 규모는 의미가 없어진다. 주가를 좌우할 변수는 여전히 많고 불확실해 보이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3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현재의 예상대로 나오고 최대 변수인 유럽 재정안정기금이 1조~2조유로 이상 확대되는 초대형 호재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변동성에 대비하면서 올해 말까지 증시를 '긍정' 쪽에 다소 무게를 두는 투자전략을 가져가더라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이는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