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홍수피해 확산…세계 1,2위 HDD 업체 공장 물에 잠겨

도요타 등 日 기업 800곳 이상 조업중단
경제손실 6조원 넘어… 물난리 장기화 우려
태국의 홍수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태국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강 제방이 일부 무너지면서 수도 방콕마저 물에 잠겼다. 저지대 27곳에는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경제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산업단지에 몰려 있던 일본 등 외국계 제조업체는 대부분 공장 문을 닫았다. 물류망도 상당 부분 훼손됐다. 이번 홍수로 인한 태국의 유 · 무형 경제 손실은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홍수피해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태국 인근 국가들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물난리가 길어질 경우 동남아시아 전역이 '홍수발(發)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비명 지르는 외국기업들

지난 7월 시작된 홍수가 장기화되면서 태국에 진출한 해외기업들의 피해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구동장치(HDD) 업계가 가장 타격이 크다. 이 분야 세계 1,2위인 미국의 웨스턴디지털과 시게이트테크놀로지의 태국 현지공장은 모두 물에 잠겼다. 이 탓에 웨스턴디지털의 올 4분기(10~12월) 출하량은 2200만~2600만대 수준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애플 등에 물량을 공급하고 있는 시게이트의 현지 공장도 전면 가동 중단돼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전 세계 HDD 공급량의 60%를 책임지고 있는 두 회사는 제품의 절반가량을 태국에서 만들고 있다.

외국계 기업 중에서는 특히 일본 기업의 피해가 크다. 중국과 한국에 밀린 가격경쟁력을 만회하고 엔고로 인한 수출 채산성 악화를 상쇄하기 위해 태국으로 생산공장을 대거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번 침수로 조업 중단 등의 피해를 입은 일본 기업은 8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주말부터 태국 내 모든 일본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았다"며 "일본 진출 기업 중 70%가량이 이번 홍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에 나가 있는 일본 자동차 회사는 도요타 등 모두 8개사로 가동이 완전 중단될 경우 하루 평균 6000대가량의 생산차질이 예상된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한 달간 태국 공장이 가동 중단되면 2200억엔(3조3000억원)의 매출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왜 피해 커졌나

태국은 매년 홍수를 겪지만 올해 유독 피해가 크다. 지난 7월 이후 홍수에 따른 사망자만 350명이 넘는다.

홍수피해의 1차 원인은 기록적인 강수량이다. 피해가 집중된 태국 북부지역의 지난 9월 강수량은 평년치를 46% 초과했다. 7월과 8월에도 예년보다 20~40%가량 강수량이 많았다. 치수사업이 늦어진 것도 피해를 키웠다. 2005년 총선에서 압승한 탁신 친나왓 정부는 대대적인 치수사업을 계획했지만 군사 쿠데타로 실각하는 바람에 홍수방지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올해 탁신 지지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정치적 기반이 약해진 뒤였다. 치수사업 대신 임금 인상과 쌀 고가 매입 등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이 앞줄에 섰다. 니혼게이자이는 "홍수방지대책이 계획대로 추진됐으면 이번 같은 대규모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는 22일 홍수피해 대책을 설명하며 "강물을 바다로 빼기 위해 방콕으로 향하는 모든 수문을 개방했다"며 "홍수가 4~6주간 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우려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장성호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