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끝장 못본 한·미 FTA 끝장토론

이정호 경제부 기자 dolph@hankyung.com
"지난 4년간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토론회와 보고회에 참석한 횟수만 200번이 넘습니다. 그동안의 논의는 다 무시하고 처음과 똑같은 반대 논리만 펴니 속터질 따름입니다. "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지난 20일부터 사흘간 개최한 '한 · 미 FTA 끝장토론'에 참석했던 외교부 관계자는 답답한 속내를 이렇게 털어놨다. 이번 토론회는 국회 비준 처리를 앞두고 한 · 미 FTA 핵심 쟁점에 대한 찬반 양측의 의견차를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토론회는 예상처럼 제대로 된 의견 교환없이 서로의 시각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투자자 · 국가소송제도(ISD) 등 반대 측이 한 · 미 FTA 협정의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외교부가 일일이 해명하는 식으로 진행된 '끝장 토론'은 기존 공청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한 · 미 FTA의 반대 측 주장에 대해 이미 책 한 권이 넘는 반박 자료를 만들었는데,반대론자들의 논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정부 얘기는 믿지 않겠다고 버티는 데 어떻게 토론이 진행되겠습니까. "3일간 진행된 1200분이 넘는 토론은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 · 미 FTA 협상을 주도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미국 파견관''매국노 이완용'이란 말을 서슴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그럼 한 · 미 FTA를 찬성하는 국민들은 모두 이완용이냐"며 맞섰다. 결국 사흘간의 한 · 미 FTA 끝장토론은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고 24일 예정에도 없던 정리 토론을 한 차례 더 갖기로 했다.

국익에 문제가 있는 협상이라면 발효를 미뤄서라도 고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야당의 시간끌기식 반대는 국가 신인도 하락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사업 기회를 무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FTA 이행법안에 서명함에 따라 한 · 미 FTA 발효를 위한 비준 절차를 모두 끝냈다. 미국의 비준안 '선(先)처리'를 주장해왔던 야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 한 · 미 FTA는 야당이 집권했던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된 국가 간 협정이다. '재(再)재협상'이란 비현실적인 요구를 내세워 반대하기보다는 결자해지 심정으로 스스로 마무리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정호 경제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