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가을] 인류와 공존하는 곤충의 세계 ‘흥미진진’

인섹토피아│휴 래플스 지음│우진하 옮김│21세기북스│656쪽│2만8000원
중국 상하이에서는 8월부터 11월까지 귀뚜라미 씨름대회가 열린다. 당나라 때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귀뚜라미 씨름은 도박과 궁합을 이루며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상하이 시내에만 귀뚜라미 시합장이 수천개에 달하고, 귀뚜라미의 무게를 재는 ‘젠(zhen)’이라는 단위가 있을 정도다. 귀뚜라미를 사고파는 시장이 번창하고 관련 문화행사도 열린다.

이처럼 곤충은 인간과 긴 역사를 함께해왔다. 집과 음식, 심지어 잠자리까지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인섹토피디아》는 흥미진진한 곤충의 세계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딱딱한 과학책이 아니다. 저자는 미국 뉴스쿨(New School)의 인류학 교수다. 인류학자가 쓴 곤충책답게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로서의 곤충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제목은 ‘곤충(insect)’과 ‘백과사전(pedia)’을 합성한 말. 구성도 A부터 Z까지 백과사전식이다. ‘하늘(air)’부터 ‘선의 세계와 낮잠의 예술(zen and the art of zzz)’까지 다양한 키워드로 구성된 26편의 이야기를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A 하늘’은 1926년 비행기를 타고 최초로 상공의 곤충을 포획한 과정을 소개한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시골 벌판의 1평방마일 위에는 3600여만마리의 곤충이 산다. 저자는 저 높고 광활한 하늘 위에 곤충들로 가득찬 세상이 있음을 알린다.

‘C 체르노빌’에서는 방사능 오염으로 기이하게 변형된 곤충들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코넬리아 헤세호네거의 이야기를, ‘G 너그러움’에서는 13세기 송나라 시대 《귀뚜라미 서(書)》라는 책이 나왔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중국의 귀뚜라미 씨름을 다룬다. ‘J 유대인’에선 나치의 무참한 유대인 학살과정을 추적한다. ‘L 언어’에서는 벌의 언어를 해독해 노벨상을 받은 카를 폰 프리슈를 소개한다. ‘S 성(性)’에서는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제프 빌렌차라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W 지구 온난화의 소리’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전조이자 원인으로 지목받는 피년소나무 안 좀벌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과학은 물론 역사, 문학, 철학, 종교, 경제, 예술 등 다양한 시각으로 곤충의 세계를 조명한다. 하지만 곤충은 이야기의 재료일 뿐 결국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인류가 이 지구 상에 자리를 잡았을 무렵에도 곤충이 함께 있었다”며 “이 세상을 대표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어디에선가 조용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