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의 듀퐁?…"핸드백으로 女心 잡겠다"

알랑 크레베 S.T.듀퐁 사장

2012년 론칭…서울 청담동에 플래그십스토어
"트렌드 좇기보다 139년 전통 디자인 살릴 것"
'영업적자 750억원.' 프랑스 명품 브랜드 S.T.듀퐁이 받아든 '2005회계연도(2005년 4월~2006년 3월) 성적표'는 이랬다. 이대로 가다간 파산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P&G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서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을 섭렵한 알랑 크레베 사장(51 · 사진)이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건 130년이 넘는 S.T.듀퐁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였던 2006년 가을 무렵이었다.

크레베 사장의 'S.T.듀퐁 뜯어고치기'는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여기저기 벌여놓았던 사업을 차례로 접고 '본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줄어들기만 하던 매출은 작년을 기점으로 두 자릿수 상승세로 돌아섰고,수익 구조도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됐다. S.T.듀퐁 부활 스토리의 주인공인 크레베 사장을 최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났다. 새로운 펜 · 라이터 컬렉션인 '몽 듀퐁' 출시를 기념해 방한한 그는 2006년 취임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방향성을 잃은 채 헤매고 있었죠.S.T.듀퐁의 DNA는 라이터 펜 등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명품 액세서리를 프랑스적인 감각과 장인정신으로 풀어내는 것인데,'튀는'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던 미국 · 이탈리아 브랜드에 빠져 정체성을 잃었던 겁니다. 돌체&가바나처럼 '크레이지'한 옷을 만든 뒤 전 세계를 돌며 패션쇼도 열고….내 것을 버리고 남의 옷을 억지로 걸쳤는데 어느 고객이 좋아하겠습니까. "

크레베 사장이 내놓은 해법은 "과거에 잘 했고,앞으로도 잘 할 분야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라이터,펜,가죽제품,클래식 의류 등 4개 분야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 '다시는 S.T.듀퐁의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위해 로고 바로 밑에 '금은 세공 · 옻칠 · 가죽제조 장인,1872년부터'란 문구도 넣었다. 여느브랜드처럼 그때그때의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전통이 담긴 고전적인 디자인과 프랑스 정부 공식 납품업체로 인정받은 높은 품질로 승부했다. 잃어버린 여성 고객을 붙잡기 위한 작업도 병행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60%를 차지했던 여성 고객이 20% 미만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객 리스트에는 오드리 헵번,코코 샤넬,재키 케네디 등도 포함돼 있었다.

크레베 사장은 "S.T.듀퐁의 139년 역사 중 '남성의 듀퐁'이었던 때는 1990년대 이후 15년에 불과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원색을 입힌 라이터와 아름다운 펜들을 내놓았더니 여성고객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덕분에 20%에 불과했던 여성고객 비중이 4~5년 만에 40% 수준까지 올라왔다"며 "샤넬 수석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와 손잡고 '몽 듀퐁' 라인을 내놓은 것도 여성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다음 공략 대상은 여성용 핸드백이다. 내년 전 세계 론칭을 앞두고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리비에라' 핸드백 시제품 발표회도 가졌다. 가격은 루이비통보다 10%가량 낮게 책정할 계획이다. 그는 "시제품이 순식간에 팔려나갈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핸드백이 시장에 안착하면 S.T.듀퐁의 이미지도 '남성의 전유물'에서 '남녀 모두가 즐기는 명품'으로 확실하게 바뀔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국시장에 대해선 "S.T.듀퐁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한국은 프랑스(15%)와 중국(12%)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라며 "내년 중 서울 청담동에 S.T.듀퐁의 모든 제품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