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통령 좀 아는데"…6억 받고 잠수 탄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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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 한국 사회는 '브로커들의 놀이터''이국철 폭로 의혹'을 맡은 심재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3부장검사는 이 사건 전에 한 브로커의 사기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담당 검사는 이 브로커를 검찰 조사실에 불러 학력조회부터 했다. 브로커가 졸업했다는 대학에 사실관계를 문의하자 졸업생이 아닌 것으로 나왔다. 다시 답변한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실랑이 끝에 출신 대학을 확인하니 이번에는 고등학교도 가짜였다. 결국에는 중학교까지 거짓으로 이야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담당 검사는 조사 시작 후 혐의는 추궁하지도 못하고 학력 확인에만 6시간을 보내야 했다.
학력은 모두 거짓, 인맥 자랑은 기본
"위에 잘 얘기해줄게" 수억 쓰고 헛물만 켜
이국철 SLS그룹 회장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브로커들의 놀이터'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이 회장이 정부 전 · 현직 고위 인사들에게 금품로비를 시도하는 과정에 브로커들에게 돈을 수억원씩 쓰고 대부분 헛물을 켠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서다. 거짓 학력 등을 내세워 고위층 인맥을 자랑한 후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아 챙기는 수법에 놀아난 셈이다. 이 회장은 2009년 창원지검 수사를 받을 당시 모 재벌가의 사위였고 법조계 인맥이 탄탄하다는 김모씨를 만났다. 김씨의 '배경'을 눈여겨본 이 회장은 "수사를 무마해달라"며 1억원을 건넸지만 창원지검은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씨가 1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은 또 계열사 SLS조선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대형 스크린골프장 소유주인 이모씨에게 6억원을 빌려준 후 함께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씨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대통령과 가끔 식사를 한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리는 전형적인 브로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6억원을 돌려달라며 최근 이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인맥 자랑은 브로커들의 기본이다. 지난달에는 부산지법에서 마약 사건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 측에 최형우 전 한나라당 의원의 사촌동생으로 속이고 "최 전 의원이 아는 부장판사에게 힘을 쓰겠다"며 1000만여원을 받아 챙긴 브로커 최모씨가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브로커들의 활동 영역은 건설,대출,위장결혼,사채,손해사정,군사,의료 등 발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지난 5월에는 '군부대 브로커'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파주 임야를 공장부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관할 군부대로부터 군사협의를 받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5000만원을 챙겼다. 지난달에는 '의료법인 명의대여 알선브로커'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비의료인을 부산의 한 병원 대표에게 소개해 명의를 대여받아 병원을 운영하게 해주고 900만원의 수수료를 받았다가 적발됐다. 2005~2006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법조 브로커' Y씨의 혐의 내용은 무려 150가지에 달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