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FTA 연설' 안듣겠다는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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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랜만에 국회와 소통에 나서려 했지만 좌절됐다. 이 대통령은 국회에서 국민들에게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당부하는 연설을 하려고 했지만 야당이 '태클'을 걸어 무산시킨 것.
전후 과정은 이렇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여야가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 대통령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연설을 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짰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이 대통령이 국회에서 직접 연설을 하며 국민에게 호소,보고하고 설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야당은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한나라당과 함께 의회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으면 한다"고 공식 제안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지난 21일) 야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한 · 미 FTA에 대해) 설득한 것도 의회중심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즉시 여야 원내대표들을 불러 간담회를 가졌지만 민주당은 이를 거부했다. "대통령 연설로 야당에 FTA 통과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우려가 있고,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략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게 거부 이유였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 17일 이 대통령의 방미결과 설명을 듣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박 의장이 대통령의 국회연설에 대해 언급하자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며 거부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었고,그로 인해 진정한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한 · 미 FTA라는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을 정치적 이유로 거부한 것은 이전의 태도에 비춰봐도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에게 줄곧 정치권과의 대화를 주장해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야 국민 앞에 나서겠다고 하는 대통령도 잘했다고 할 수 없지만,이런 대통령을 막아서며 한 · 미 FTA 반대 고집을 꺾지 않는 야당의 모양새는 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미국의 경우 야당인 공화당은 지난해 1월 당내 정책 연수회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초청해 90분이나 토론을 갖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장은 민주주의의 전당이다. 한 · 미 FTA 찬 · 반을 떠나 이곳에서 대통령과 야당이 국익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걸까.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