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빚, 아르헨처럼 절반 이상 탕감해야"

디폴트 겪은 아르헨ㆍ러시아, 최고 86%ㆍ63% 손실 처리
EU 재무장관회의 취소…재정위기 해결안 막판 진통
"부채탕감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여야만 그리스 부채 문제를 어느 정도 안정시킬 수 있다. "(로이터통신)

지난 23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선 당초 21%로 정했던 그리스 국채 부채탕감(헤어컷) 비율을 50~60% 수준으로 높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데 미온적이었던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ECB)이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강경세력에 밀린 것이다. 평균 76%의 부채탕감률을 기록했던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디폴트(채무불이행)나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했던 국가들의 전례로 볼 때 60%의 손실률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오늘의 그리스는 10년 전 아르헨티나

그리스에 앞서 디폴트나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아르헨티나 러시아 멕시코 등은 객관적인 경제지표뿐 아니라 포퓰리즘,정치권의 무능 등에서 그리스와 유사점이 많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그리스의 오늘은 10년 전 아르헨티나"라고 보도했다.

1999년부터 계속된 경기침체로 930억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했던 아르헨티나는 2001년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일본 등의 투자자들은 아르헨티나 정부와 지루한 협상을 진행했다. 결국 200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채무재조정이 이뤄졌고,최대 42년까지 만기를 연장했다. 채무재조정을 할 때마다 부채탕감 비율은 25~86%로 다양했다. 1998년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러시아의 경우 네 차례에 걸쳐 채무재조정이 진행됐다. 부채탕감률은 40~63%에 이르렀다.

하지만 비슷한 채무재조정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가 아르헨티나와 러시아처럼 회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원부국인 아르헨티나와 러시아는 곡물가와 천연가스 · 유가 상승 덕에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러시아 루블화와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평가절하도 도움이 됐다. 자원빈국에 유로라는 공동통화에 묶여 있는 그리스와는 차이가 큰 것이다. ◆민간은행 40% 주장이 변수

로이터통신은 "당초 논의됐던 21% 수준 탕감률을 적용할 경우 그리스 구제에 2500억유로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필요자금은 현재 계획된 2차 그리스 구제금융(1090억유로)을 크게 뛰어넘는 규모다. ECB는 탕감 비율을 50%로 올릴 경우 필요한 구제금융 액수를 1135억유로로 추정했다. 탕감률이 60%가 되면 필요자금은 1093억유로로 줄어든다.

다만 급격하게 민간부문 손실 비율을 높일 경우 상당수 유럽 은행들의 연쇄 도산이 우려된다. 신용평가업체 무디스는 "탕감 비율을 60%로 정하면 그리스 은행권만 총 440억유로 자본확충을 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유럽 은행권도 고심에 빠져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헤어컷 비율을 50% 이상으로 올리면 유럽 은행권 피해가 1080억유로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한편 26일 EU 정상회담 전에 열릴 예정이던 EU 재무장관회의가 취소됐다. EU 집행위원회는 25일 "EU 정상들은 26일 예정됐던 EU 재무장관회의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다만 각국 재무 관리들은 정상회의 전까지 협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집행위는 취소 배경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재정위기 종합대책을 둘러싼 세부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이날 EU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열린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