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바보 빅터' 연극 무대 성황…눈물과 감동, 환호의 100분

아트 무대에 '바보' 실감 연기
비디오아트 작품을 보는 듯하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모니터들과 천장에 매달린 돌고래 모빌….배우가 등장하기도 전인데 관객들의 시선은 무대에 고정된다. 무대는 돌고 돌며 과거와 현실을 교차시킨다.

의식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타임머신이다. 의자는 무대를 교실로,교회로,스쿨버스로,식당으로 바꾼다. 의자는 때때로 무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좌절과 고통의 표현이다.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바보 빅터'.주인공 빅터와 로라가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기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쓴 호아킴 데 포사다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

자신의 IQ가 173인 줄 모르고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던 멘사협회장 빅터 세리브리아코프와 '못난이 콤플렉스'로 힘겹게 지내오던 사연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고백해 화제가 된 트레이시의 실화를 토대로 한다.

학교에서 늘 놀림을 당하는 빅터,집에서 못난이로 불리는 로라.로라는 빅터에게서 특별함을 발견하지만 둘의 만남도 잠시,빅터의 IQ가 73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빅터는 학교를 떠난다. 그러던 어느날 빅터는 도로 광고판에 적힌 애프리사의 특별채용 문제를 풀고 입사하지만 어릴 적 자신을 놀렸던 조엘과 마주치면서 또 자신감을 잃고 회사도 떠난다. 그 후 다시 만난 로라에게 자신이 IQ 173의 천재라는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된다. 원작 소설과 달리 연극은 어린 시절,로라와의 재회,애프리 입사,아버지의 죽음 등 주요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가 아닌 빅터의 의식흐름에 따라 배치했다.

턴테이블로 이뤄진 무대는 미디어아트,키네틱아트와 결합돼 절묘하게 주제를 표현한다. 공간의 확장이면서 빅터의 내면을 엿보게 하는 비주얼 형태의 소통이다.

빅터와 로라는 닮았다. 바보도 아니고,못생기지도 않았는데 바보와 못난이로 산다. 둘의 관계는 엇갈리기만 한다. 의자에 앉을 때도,그네를 탈 때도 둘은 차마 마주볼 수 없다. 아버지가 죽고난 후 빅터가 로라의 편지를 읽으며 슬픈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친다. "바보로 사는 거 나쁘지 않아.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웃으면 돼."

스스로를 바보라고 여긴 빅터는 차라리 행복하다. 그래서 로라의 슬픔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로 유명한 연출가 박승걸은 속도감 있는 장면 전환과 극 전개로 긴장감을 높인다. 공연은 중간 휴식 없이 100분 동안 이어지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보다 타인의 시선과 잣대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는 않은가. " 빅터뿐 아니라 우리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천재의 영리함과 바보의 순수함이 공존하는 빅터 역의 한정호,어쩌면 빅터보다 더욱 불행한 삶을 살았던 로라 역의 김시영이 섬세한 감정연기를 펼친다. 1인 다역을 소화해낸 김신용 리민 배영해 천재홍 김기주의 맛깔스런 연기가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작품에 웃음을 안겨준다. 내년 1월15일까지 공연된다. (02)549-1105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