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미FTA를 '개혁 도구' 삼아선 안돼

'환란극복' 후유증 답습은 곤란…외세 이용한 제도정비 조심해야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
1884년 개화파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청나라와 결탁한 수구파를 일본의 힘을 빌려 타도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개화파의 의도대로 됐을까. 당시 개화파를 원조했던 일본의 목표는 한국의 근대화가 아니라 식민지화였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많은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 갑신정변 때 개화파와 닮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환위기 원인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장한 것처럼 국내 경제구조가 아니라 국제적 유동성 부족이었다. 그 부족한 유동성을 일본이 공급해 주려고 했지만,미국 재무부가 그것을 제지하고 월가의 이익을 위해 외환위기로 끌고 간 것이다. 당시 한국인의 대응은 어땠는가. 외환위기의 진짜 원인인 '월가-미 재무부-IMF 복합체'의 의도를 따져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IMF의 구조조정 요구가 그 전 한국이 스스로 하려고 했던 개혁과 비슷했기 때문 아닌가. "차라리 잘됐으니 이참에 개혁하자"고 IMF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갑신정변과 달리 외환위기 후 구조조정은 실제로 시행됐다. 그 결과 일부 개혁이 이뤄졌지만,전체적으로 보아 한국인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것은 적어도 2000억달러가 훨씬 넘는 '국부유출'에다 성장동력 저하와 양극화다. 물론 1997년 한국인이 그런 식으로 대응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60년대 미국이 시장을 열어주면서 수출하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결과 큰 덕을 보았다. 80년대 미국의 개방 압력조차 정경유착 관치금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측면이 있었다.

1997년 한국인이 간과한 것은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2차대전 이후 50여년간 미국의 '헤게모니'는 냉전도 있고 해서 '자비로운(benevolent)'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1990년대 중반쯤에는 그런 성격이 사라졌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추진 때부터 방향설정에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그 주요 목표를 '국내 제도 정비'로 잡았던 것이다. 이것은 1997년 IMF의 요구를 국내 개혁에 이용하려 한 논리의 연장이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수록 한국에도 이익이다.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국내 지식재산권 보호에 도움이 된다. 카피약 판매를 어렵게 만드는 것도 의사와 제약사의 유착을 끊어서 개혁에 도움이 된다. 기업형 슈퍼에 대한 규제나 '4대강 굴삭기 총량제' 시행이 어려워지는 것도 규제를 줄이는 것이니까 개혁이다.

그러나 지식재산권 보호나 의사와 제약사 간의 유착관계를 끊는 개혁 같은 것을 FTA를 빌려서 해야 하는가. 기업형 슈퍼에 대한 규제나 굴삭기 총량제 같은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불필요한 규제다. 이 문제들은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이 실현될 수 없는 중 · 단기에서 불가피한 차선책은 될 수 있다. 그런 차선책을 위한 '정책의 재량권'을 상실하는 것이 개혁인가.

미국 헤게모니의 성격이 변했다지만,갑신정변 때의 제국주의가 다시 도래한 것은 아니다. 한 · 미 FTA에서 미국의 힘이나 의도가 1997년 위기 때 미 재무부와 같은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외세의 힘을 빌려 국내 개혁을 하겠다는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 · 미 FTA에서 정부는 '4대 선결조건'부터 '재협상'에 이르기까지 말 바꾸기를 해서 스스로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이제 "개혁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 한 · 미 FTA의 목표는 아니다"고 한 번 더 말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서 한 · 미 FTA가 가져오는 국내적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길일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