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경찰 수사권에만 목맸나
입력
수정
임도원 지식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있는 한 부장검사가 지난해 지방에서 근무하며 겪은 일이다. 이 부장검사는 해당 지역 유명한 조직폭력배 세력의 실체를 파헤쳐 조직원 200여명의 혐의를 규명했다. 문제는 검거였다. 그는 지역 경찰청에 수십명의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혹시라도 경찰 측에서 '공(功)'이 전부 검찰에 돌아갈 것을 염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사결과는 경찰에서 발표해도 좋다"고도 얘기했다.
경찰 측은 그러나 별로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경찰관이 검찰에 파견되면 종속돼 보이기 때문에 검찰청으로 가기를 꺼린다"는 이유였다. 결국 검찰 파견자는 3명에 그쳤다. 어렵게 해당 조폭 조직을 와해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단기간에 마무리하려던 수사는 인력 부족으로 1년 가까이 걸렸다. 경찰은 25일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대통령령 2차 초안을 검찰과 법무부에 제출했다. '경찰의 날'인 지난 21일 밤 인천의 한 장례식장 앞에서 조폭 130여명의 유혈 난투극이 벌어져 여론의 질타를 받는 와중이었다. 이 직전에 검찰과 법무부는 경찰의 '내사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으로,경찰은 검사의 수사지휘 범위를 자세하게 규정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시행령 초안을 각각 국무총리실에 제출했다.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면 적절한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이명박 대통령도 21일 "경찰도 명실상부한 수사의 한 주체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은 결국 수사를 잘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찰의 최근 모습을 보면 본말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인천 장례식장의 조폭 난동만 해도 현장에는 70여명의 경찰이 출동했고,그 중 2명은 총기도 휴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상부에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조현오 청장도 언론보도를 접하고서야 이런 일이 벌어진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검찰로부터 수사 지휘를 받기가 싫어 조폭 수사도 제대로 안하던 행태가 이번 사태를 낳지는 않았나 의심이 든다. 조폭들이 낫을 들고 장례식장 계단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누가 지휘를 하건 간에 일선 경찰이 사태를 수습하길 원했을 것이다. 조 청장은 얼마 전 "경찰청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돼야 한다"는 소신을 펴기도 했다. 권리를 주장하려면 책무부터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임도원 지식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