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개똥 재판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ng.com
미혼 여성에게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라고 하면 다들 질색을 한다. 아무리 예쁜 조카라도 마찬가지다. 쉬라면 또 모를까 응가,특히 묽은 응가를 해놓은 경우엔 더하다. 엉덩이까지 닦으려면 손에 묻기 십상인데다 냄새도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못한다고 꽁무니를 빼거나 보는 것도 힘들다며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그런 사람도 결혼해 제 아이를 낳으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달라진다. 안고 있던 아기가 설사를 해 입었던 옷에 묻어도 괘념치 않고 아기 상태부터 걱정한다. 애완견을 대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라면 영 못마땅해 하던 사람도 자기 개에겐 마냥 너그러워진다. 집안에서 뛰거나 짖어도 그런가보다,동네 여기저기 응가를 해도 '개가 원래 그렇지 뭐' 하는 식이다. 이러니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인상을 쓰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걸 넘어 대판 싸우거나 심지어 법정까지 가는 일도 있다. 국내의 경우 아파트 현관에 묻은 개 배설물 때문에 옆집끼리 고소와 맞고소를 반복하다 한쪽이 무고죄로 실형을 선고받는 사태까지 발생했다는 정도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닌 듯 미국에선 엊그제 '개똥 주인 찾기' 재판이 열렸다는 소식이다. 이웃에서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지 않았다며 고발하자 고발당한 쪽에서 억울하다며 재판을 청구했는데 흡사한 다툼이 많아서인지 워싱턴포스트가 재판과정을 트위터로 생중계했다는 것이다. 결과가 무죄였다는 걸 보면 개똥의 주인은 따로 있었던 듯하다. 일이 그 지경에 이른 건 미국에서도 애완견 배설물을 안치우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벌칙보다 양심에 맡기는데 소용이 없자 애완견 DNA를 확보해 개의 배설물 지문(PooPrint)을 추적하는 첨단 기법까지 동원되고 있다는 마당이다.

국내에선 2005년 10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애완동물을 산책시킬 땐 목줄을 착용하고 배설물은 치우도록 규정(어기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한 데 이어 2013년 1월부터는 애완견 등록제를 시행하기로 한 상태다.

함께 생활하는 애완견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주위의 눈총이나 공격을 받지 않게 하자면 남이 뭐라기 전에 배설물을 치우고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못하겠으면 처음부터 기르지 말 일이다. 사랑엔 책임과 의무가 따르게 마련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