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짝퉁 적발 年1조…알고 사는 게 문제
입력
수정
전호석 <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장 / 현대모비스 사장 >정보통신 활용도 세계 1위,조선산업 세계 1위, 그리고 기술의 총아로 불리는 자동차산업 생산량 세계 5위.주요 20개국(G20) 일원으로 세계 지도국의 반열에 올라서고,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현주소다.
그런데 이런 국가적 위상과는 맞지 않는 부끄러운 현실도 있다. 최근 들어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모조품 유통시장이 그 중 대표적인 하나다. 우리나라 불법 짝퉁시장의 규모는 140억달러.러시아,영국,브라질에 이어 세계 10위권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위조상품의 범위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명품가방과 의류,화장품,시계,서적,주류에서부터 최근에는 자동차부품과 의약품,식품류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모조품은 기업의 재산을 훔치는 엄연한 범법행위다.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신기술 제품의 유통질서를 파괴함으로써 기업의 기술개발 의지와 사기를 꺾는 위협요소이자,궁극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를 붕괴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나아가 관련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추락시키고,애써 끌어올린 국가 브랜드 위상의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동차부품과 의약품은 사람의 안전과 생명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되는 대목이다. 가짜 의약품과 식품은 국민 보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위조된 자동차부품은 운행 중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시한폭탄'에 다름없다. 자동차 한 대에는 2만여개의 부품이 필요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부품들 중에서 어느 한 부품의 품질불량만으로도 자동차 운행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각한 피해를 인식한 정부도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지식재산권은 물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해 왔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실제로 지난해 관세청에서 특별단속기간 등을 통해 적발한 위조 상품 규모만 1조원대에 이른다. 특허청도 지난해 9월, 불법 위조제품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상표권 특별 사법경찰대'를 출범하고, 지금까지 위조상품 사범 140여 명을 형사입건하는 한편, 위조 상품 4만8000여 점을 압수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모든 모조품을 단속할 수 있는 '천망회회(天網恢恢)'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위조 상품의 제조와 유통이 더욱 지능화되고 치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조 제품이 시장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스스로의 인식전환과 경각심이 절실하다. 최근 실시한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위조 상품을 구입해 본 소비자의 88.7%가 '위조 상품인 것을 알고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대부분이 이에 따른 죄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상표법의 취지는 단순히 상표권자의 보호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불법 모조품이 아닌 진품이 정상적으로 유통돼 일반소비자들이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소비행태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면, 합리적인 소비생활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된다.
경제 및 문화대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가 짝퉁대국이라는 부끄러운 순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제도적 대책 마련과 함께, 소비자 스스로가 위조 상품이라는 사탕발림에 현혹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처럼 건전하고 현명한 소비 마인드와 패턴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정착될 때, '삼밭에 나는 쑥'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불법 위조제품도 영원히 추방될 것이다.
전호석 <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장 / 현대모비스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