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ㆍ오치균, 향토적 질감으로 通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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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미술관 '화강암과 흙벽에 새긴 풍경' 展"예술은 고양의 눈빛처럼 쉽사리 변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 깊게 한 세기를 파고드는 것이다. 난 옛 석물과 석탑,석불 같은 것에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조형화하려고 노력했다. "(박수근 화백)
"그림 그리기는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풀어내는 아름다운 작업이다. 문학에서 문체가 미감을 만들어내듯 그림 또한 질감에서 감동을 뿜어내는 것이다. 화면에 우리 땅 냄새 같은 향토성을 살려내고 싶다. "(서양화가 오치균)'국민화가' 박수근 화백(1914~1965)과 50대 인기 화가 오치균 씨(55)가 작품으로 만났다. 강원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화강암과 흙벽에 새긴 마음의 풍경'전에서다.
박 화백은 소박한 여인과 아이,촌로 등 서민의 정서를 화강암 같은 투박한 질감으로 그려낸 대한민국 대표 화가.
1950년대 후반 작품으로 추정되는 20호(37?C72㎝) 크기 유화 '빨래터'는 45억2000만원에 팔려나가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강원도 사북 탄광촌의 애수 어린 풍경을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리는 지두화(指頭畵 · Finger Painting) 작가 오씨는 2007년 6월(서울옥션) 50호(122.5?C82㎝) 크기 작품 '길'이 5억원에 낙찰돼 '억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박 화백 탄생 97주년을 기리는 이번 특별전에는 '마을' '굴비' '앉아있는 남자' '두 여인' 등 유화 8점과 프로타주 12점,탁본 2점,전각 3점,판화 3점 등이 출품됐다. 박 화백이 작고 직전에 쓴 신사임당의 그림과 글씨에 대한 서화론이 실린 1965년 5월 '여원'지와 복숭아 꽃 그림도 공개됐다.
오씨는 사북 탄광촌의 막장 인생들에 배인 어둠 슬픔 비애 같은 이미지를 비롯,소나무길과 주홍빛 감나무를 황토 같은 질감으로 살려낸 작품 20여점을 걸었다. 박 화백의 작품 '갈비' '앉아있는 남자' '두 여인'을 보면 질박한 화강암 질감의 유래가 궁금해진다. 엄선미 박수근미술관 학예사는 "박 화백은 유화물감 비율을 조절하며 바탕 화면에 층을 만들어 화강암의 질감을 우려냈다"고 말했다.
1960년대 색연필 그림 '소'와 탁본 '임신서기석' '와당 재떨이' 등의 작품들은 전통 문양에서 나타나는 선미와 질감에 대한 연구 흔적을 보여준다. 양구군이 지난 3월 K옥션 경매에서 8억원에 구입한 박 화백의 1964년작 유화 '마을'은 큰딸 인숙씨가 대학에 입학한 기쁨에 고무돼 그린 작품으로,투박한 화강암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오씨는 "박 화백이 구현한 화강암 질감을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한편으로는 내 식대로 해보고 싶다는 치기도 발동했다"고 전했다. 오씨는 그동안 화면에 흙의 질감을 살려 스산한 겨울 풍경이나 힘겨운 서민들의 삶을 담아왔다. 손바닥과 숟가락에 물감을 발라 두텁게 층을 지어내는 지두화 기법으로 작업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색을 칠하는 게 아니라 물감을 발라 올림으로써 흙의 질감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기법상의 특이함 때문인지 그의 화면에는 수수한 대지의 모습이 시나브로 찾아든다.
그의 '사북' 시리즈는 서민과 향토색을 화필로 질끈 묶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눈이 수북이 쌓인 장독대,소나무 숲 양쪽으로 난 황톳길,진홍빛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등은 박 화백의 그림 분위기와 비슷하다.
미술 평론가 김윤섭 씨는 "두터운 질감으로 풍경을 묘사한 밀레와 박수근,오치균은 유사한 계열의 화가로 여겨진다"며 "농부를 묘사한 밀레가 밀레답듯 서민에 몰두한 박수근,오치균 역시 우리 고유 향토색 짙은 질감을 만들어내는 그림쟁이"라고 평했다. 박수근미술관장인 전창범 양구군수는 "박수근 브랜드를 세계화하기 위해 미술관 부지와 소장 작품을 늘리고 있다"며 "2014년 박 화백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박 화백의 내적인 예술혼을 잇기 위해 향토의 미감을 살려내는 오씨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특별전을 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31일까지 이어진다. (033)480-2655
양구=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