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성화에 숨겨진 예수회 현지화 전략

미랑추랑 - 정석범의 재미있는 미술이야기 (12) 서양 성자의 중국 나들이

16세기 제작 히에로니무스상
中 종교인물화 관행 따라 묘사…사자와 친밀하게 배치 눈길
참 희한한 그림이다. 얼핏 보기에는 동양의 전통적인 산수인물도 같다. 선의 맛에 의존한 배경의 소나무와 산세 묘사를 보면 그렇다. 그러나 나무 아래 묘사된 앳된 인물을 가만히 보면 중국인의 생김새와 거리가 멀다. 쌍꺼풀의 커다란 눈,오뚝한 코에서 터키를 비롯한 아랍인의 인종적 특성이 느껴진다. 놀라운 것은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그렸다는 점인데 이는 동양에서는 전혀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시점이다. 신체 근육도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했다.

이런 사실적 묘사와는 달리 인물 오른쪽의 사자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등의 갈기와 앞다리 묘사는 그럴듯하지만 안면의 모양새는 뜬금없다. 사자는 중국에 서식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화가는 관례화된 묘사 방식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인물과 사자 묘사에 명암법 같은 서양화법을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이 그림에서는 외래문화의 뚜렷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그림은 누구를 묘사한 것일까. 프랑스 유학시절 지도교수에게 이 그림을 보여줬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생 제롬이군" 하고 대답했다. 생 제롬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성자인 히에로니무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시리아 사막에 수십 년간 은거하면서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오랜 고독 속에서 간단없이 솟구치는 정염을 떨쳐내기 위해 돌멩이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쳤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오는데 이런 그의 모습은 르네상스 이래 많은 화가들이 즐겨 묘사했다. 히에로니무스는 늘 그를 따르던 사자와 함께 그려졌고 그의 주변에는 해골이나 추기경 모자가 함께 놓였다.

물론 '사자인물도'는 기독교의 히에로니무스상과는 다르다. 서양의 경우 인물과 사자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비해 이 그림에서는 양자가 상당히 밀착된 모습이다. 일본 미술사가 니이제키 기미코는 이것을 덕망 높은 불교 혹은 도교의 수행자를 동물과 밀착된 모습으로 묘사하는 중국의 관례를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왜 중국에서 기독교 성자인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이 제작됐던 것일까. 16세기 후반 서양의 식민지 개척 선봉에 섰던 것이 예수회를 비롯한 기독교 수도회였다. 그들은 포교의 수단으로 많은 성화를 제작,유포했는데 이것이 중국인들의 거부감을 자아냈다. 원인은 낯선 유럽인의 행세와 지나치게 사실적인 묘사에 있었다. 이에 당시 중국 포교를 책임지던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들의 미감에 맞는 중국 버전을 만들어냈다. 그는 현지 화가를 고용해 기독교 성화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하도록 했다. 이 작품은 그 당시 포교용으로 제작했던 작품의 일부로 추정된다. 이런 재해석 작업을 통해 마테오 리치는 중국 포교 기반을 다지고 이는 그의 사후 중국 내 기독교 신자 확산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기업들이 미지의 시장을 노크할 때 사업 성패의 관건으로 꼽는 것이 '현지화' 전략이다. 예수회 지도자들은 현지화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선구자들이었다. '사자인물도'는 그 살아 있는 증거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