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한나라당의 '네 탓'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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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한나라당이 무기력증에 빠졌다. 지난달 26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원인을 내부에서 찾지 않고 외부로 공격 화살을 돌리는가 하면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 문제를 두고서도 야당에 질질 끌려 다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울시장 보선 패배 직후 당 지도부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반성보다는 '네탓이요'를 외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박근혜 전 대표가 공격 목표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1일 청와대를 겨냥,"국민의 뜻에 거스르는 일들이 많았고 그 중 인사 문제가 가장 컸다"고 공격했다. 이어 "한나라당 쇄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라고 비판했다. 원희룡 최고위원 역시 "새롭게 태어나는 각오를 보여주는 정치 변화가 필요한데 그 중심은 청와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발 사저 파문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은 지난해 6 · 2지방선거 참패와 지난 4월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선거 패배 이후 과연 개혁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당시에도 젊은층에게 다가가는 소통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했으나 말뿐이었다. 더군다나 '선거는 당이 치른다'며 청와대의 선거 불개입 원칙을 천명해 놓고선 이제 와서 책임을 돌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한나라당은 한 · 미 FTA 비준안을 10월에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난 31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나라당은 몸 사리기에 급급했다. 야당 의원 30여명이 외통위 회의장을 에워쌌으나 눈에 띄는 한나라당 의원은 10명도 채 안 됐다. 선거 패배 후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한 단면이다.
한나라당은 뒤늦게 천막당사에 버금가는 쇄신안을 내놓는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2004년 대선자금 수사로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들은 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극도의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여의도 공원 인근 부지에 임시로 당사를 세웠고,기소된 당원은 당원권을 정지하고 유죄 확정 시 영구 제명하는 등 개혁을 단행했다. 대대적인 총선 물갈이를 했으며 상향식 공천 시스템도 도입하면서 가까스로 당 존립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나라당은 남탓 하기 이전에 이 같은 자기희생이 절실한 시점이다. 네탓만 계속하다가는 여론은 또 등을 돌릴 것이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